나의 이야기

어머니

torana3 2023. 12. 12. 16:36

우리 어머니는 살림을 참 못하셨습니다.

먼 출근길을  겨울마다 입으셨던 낡은 회색 홈스팡 코트 차림에, 

언니들이 다녔던 여학교의 담 옆 길을 , 땅만 쳐다보고 골똘한 생각에 잠겨 걸어 가는 것을 보고 

언니 친구 들은 철학자 라며 경외 했었답니다 . 

 

교육대학의 국어  교수 였지만 영문학 향가 서정시와 연극을 망라한 열정적인 강의로 

제자들에게는 사랑을  많이 받으셨지만, 

저는 어머니란 그런 존재로 밖에 알지 못해서 

살림잘하고, 언제나 집에 계시거나, 화장대 앞에서 곱게 단장하는 다른 엄마들과 비교 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공부 하는 것도 봐준 적이 없으면서 느닷 없이 책에 밑줄 긋는 것을 제대로 못한다고  

붙들고 반복 시키다가 지치시면 짜증 내고 그만 두시는 것도, 변덕스럽다고 비판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노느라 숙제를 안해서 맨 뒷장만 펼쳐놓아도, 알고도 모르는체 하셨을 수 있는데 그냥 도장 찍어 주셨습니다.

시내 양품점에서 비싼 옷은 사주셔도 머리 한번 제대로 묶어 보내신적도 없고 

학교에 들어 가기전에는 아예 남자아이처럼 상고머리로 깍아 놓으시고,빤스와 런닝셔츠만 입고 동네 를 쏘다녔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였던가, 서울에서 전학온  세련된 여자아이가 반에서  교묘한 따돌림을 주도 했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아시고는 , 담임선생님께, 원색적인 항의를 해서 부끄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책은 참 많이 읽어 주셨습니다. 그림 그리라고 학교에서 쓰던 분필도 가져 오시고 채점이 끝난 시험지( 4절지 갱지에 두 문제 정도의 주관식 서술형) 를 가져다 주어 뒷 면에는 마음껏 만화를 그리며 놀았고 빌려다 보고 던져 놓은  만화 책을  야단 한번 안치고 대신 반납해주어 참 버릇 없는 애로 놔두셨습니다. 

 

어머니는 솜씨가 없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보다 젊으셨을 때는 언니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시고, 

맘만 먹으면 음식도 잘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빚어준 만두나 송편. 겨울에는 팥죽을   몇번 씩이나 끓여 장독대에  찬바람을 쏘여 차겁게 만들어 놓으시면  한 그릇씩 퍼다가 이불 두집어쓰고 먹던 기억으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아동기를 지나서 부터는   어머니는 인생에  가장 좋은 친구며 스승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문학과 불교 이야기는 

지금까지 제  나의  기본적인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서럽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고 무조건 나의 편이 되어 주셨으며 당신의 힘이 모자라면,  그래 내가 죽어서도 너만 따라 다니며 보살필거야 라며 주술적인 기도까지 밀어 붙이면 

다소 황당 하지만 실소하고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참 쓸쓸하게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얼마전 어머니의 열 번째 기일을 보냈습니다. 참 그립습니다.  반드시 다시 뵈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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