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torana3 2023. 3. 17. 12:33

1.지난 수요일, 외숙모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예닐곱살 무렵. 이리에 사시던 외삼촌이 전주로 전근오시면서

외가의 식구들이 우리집  방 하나에 임시로 이사 오셨습니다. 

그전까지 나에게 형제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나는 동네의 깨복쟁이 동무들과 종일 밖에 쏘다니다가 , 어둑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출근 했다,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온 식구들은 모두 나에게 어른 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속해있는 세계는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각기 자기 일과 놀이에 빠져있었고, 나로부터 등져있었으며,

나는 그 너머로 세상을 훔쳐보는그저 관찰자 였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골방에서 어른들이 보다가 던져둔 책을 넘기며,

나를 두고 저들끼리만 달려 가 버리는 그 아이들을 따라다니다가 각기 사라져버리는 

그 이미지들, 소리와 감촉, 야릇한 흥분이나, 모호한 두려움,왜곡된 의미가 무질서 하게 를 채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살 위 오빠와, 두 살 아래 여동생 , 그 밑의 남동생이 갑자기 생겼습니다.

드디어 나를 포함한 세계가 운행되기 시작합니다. 

상상의 연극, 영화 의 재연 , 소꿉놀이도 진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어린이 다운 놀이에 나의 역활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공간과 사물은  놀이감이었고, 우리는  빗자루를 가랭이 끼고 동네를 달리거나  지붕과 담위를 올라타며 칼싸움 놀이를 했고 진짜 요리같은  소꿉장난을   플롯이 있는  연극으로 꾸미며 놀았습니다. 

외숙모님은 그당시에 다른 주부들과 다르게  예쁘게 장식한 요리를 해 내오셨고,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습니다. 

 

대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분명하게 체험되는, 즉 

멜라니 클라인의 paranoid -shizophrenic position에서 바야흐로 depressive position으로 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야단도 맞아 보았고,  대상에게 양보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시기하는  감정도 배웠습니다만, 

그 모든 것은 holding environment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나는 그들을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외숙모님은 우리에게 관계의 습득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바람직한  가정다움을 제공하셨습니다. 

 

2. 주말에 오에 겐자부로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한 이십년전 쯤에 그의 작품에 한동안 심취했었습니다. 

약한 인간이 감내해야할 현실의 고뇌를 적은 수필과  경계너머의 그로테스크한  세계에 대한 그의  소설은 그 즈음, 나의 혼란과 잘 맞아 떨어졌었던 것 같습니다. 

 

그  두 사람과 나와 이루어졌던  '동시대의 게임' * 이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 오에겐자부로의 소설 제목

 

콜라쥬/ 아크릴 페인팅 / Infinity
먹선 , 긁기 , 연필 드로잉/동일 선상線上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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