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iatrist

그레이 아나토미

torana3 2018. 7. 20. 08:03

그레이 아나토미.

예과를 마치고, 본과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아마 그 시작은 해부학 실습 부터 일겁니다.

선배들의 장황한 무용담을 익히 들었지만, 그러나, 결국 의학도의 누구나 그렇듯이

그 엄숙한 관문의 통과 의례를 거치기 마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립니다.


하늘색 하드보드의 두터운 그레이 박사의  해부학 실습책.,( 지금처럼 멋진 컴퓨터 동영상은 SF 로 상상하던 때)

해부실습의 테이블위에서, 책 페이지를 들춰가며 맞춰보느라고, 기름때, 희미한 핏자국, 지문까지 찍힌

그 아나토미 책을, 밥을 먹으면서도 곁눈질하고, 옆구리에 끼고 버스에 올라타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심히 넘기던 그때가, 까마득하게 먼 옛날로, 그런 시절이 정말 있었던가...


넷플릭스에 로그인 한 후로 내쳐 그레이 아나토미를 처음 부터 다시 보고 있습니다.

의학 드라마로는, ER과 함께 가장 선호하는 드라마입니다.

 성장기,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peer grouping하는, 적절한 휴머니즘, 로맨스, 그런 요소들이

지금은 다 사라져버린, 청춘의 열정, 발랄함, 성취욕구의 에너지들을 추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는 쓰지 않을, 드라마틱한 재치있고 감동적인 수사로 꾸며진  대사들이 또한 매혹적입니다.


" 대화/ 생의 초기에  우리들이 처음으로 배웠던 것들입니다. 웃기는 일은 ,자라서 단어를 알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할지 , 정말로 원하는 일들을 요구 할 것인지, 점점 더 어려워 집니다."-그러나 또한 무슨 말인지 스스로도 모르면서 쉴새없이  뱉어냅니다.

" 진짜 어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옮겨 가고, 옮겨오고 가족을 떠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것은 계속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불확실함/ 근원적인 공포/ 오래된 상처들은 우리와 같이 자랍니다.

삶과 환경은 우리를 어른이 되도록 밀어 부치고 어머니들은 어른이기를 강요합니다.. 어른 스러운 것을..

몸집이 커지고 키가 자라고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놀이터에서 필사적으로 어울리려고 애쓰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무리 일 뿐입니다."

-진짜 어른은 없다는 말은 또한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나의 유치함을 용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신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 없는것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운이 좋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 꼭 서른세번을 말해야 한다' 는 강박행동은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있는가,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그 일이 그렇게나 신경이 쓰이는 걸까, 스스로 우리가 모든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은 똑똑 하기 때문에 미신에 기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은 항상 미스테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 강박증은 정말 어려운, 이해 할 수 없는 정신 증상입니다. 뇌발작과 유사한 신경생물학적인 메커니즘에 의한다는 것. 으로밖에 설명 할 수 없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 ,특히 ER이나 그레이 아나토미 처럼 응급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를 모델로 한다면 , 정신과 의사의 존재는 희화화 되거나 무력 해 보입니다.

ER에서는 알콜 중독에우울하여 환자를 시니컬하게 대하거나,

 그레이 아나토미에서는 완고 하고 콜드한 인도계 레지던트가 증상을 심리적인 것으로 진단하여  외과의들과 마찰하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겉으로 나타난 사실만 가지고  인간의 심리를 교과서적인  소견과 연관 시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추론에 불과 합니다.

정신치료는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미리 결정된 해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감Empathy 이라는  절차 없이는 진단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늙고 실패한 정신과 의사의 자조입니다...


The End of the World 라는 에피소드에서

환자의 몸에 박힌 불발된 폭탄을 꺼내야 하는 외과인턴 메레데스를  진정 시키기 위해서, 경찰은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내 말을 들으세요"라  합니다.

드라마적인 수사이기는 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장면입니다.


나는 그를 얼마나 믿는가, 얼마나 의지 하는가, 생과 사의 경계, 그 순간, 나는 그에게 얼마나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가...




사진 출처: Artsoop, Facebook

                           숲화실의 한 아이가 지하철 계단에 다친새를 주워 왔는데, 치료에도 불구 하고 소생하지 못하자 화실의 정원에 묻어 주었답니다.

                                              약한 것, 아픈것, 죽어 가는 것에 대한 연민 , 돌봄, 애도는 마음을 정화 시키고 평온하게 합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인턴들은, 선배들로 부터, 기술 보다 더 익혀야할 덕목이라고, 철저히 수련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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