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artsoop)이야기

순심이 그림자

torana3 2015. 11. 24. 09:02

숲의 한 청년이 애견을 데리고 왔습니다.

십개월 된 미니 그레이 하운드 종인데, 짧은 털과 분홍 빛이 도는 피부가 마치 도자기 인형 같습니다.

주인의 품에서 내리자 마자 , 사람과 물건을 킁킁 거리며 탐색하는데 그야말로 천방지축, 오두 방정입니다.

본래 사냥개의 품종이라 그렇다고 주인은 애써 변명합니다.

숲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오는 사람들은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먼,  어린아이와 유사한 정서를 갖는 탓,

대개 이런 특별한 손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주인이 공언 한대로, 숲 화실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에 대한 정보가- 냄새 맡기와 햝기로- 다 입력이 되었는지

드디어 잠잠해지고 주인의 품에 고요하게 안겨 있습니다.

 

작품을 시작 하려고 펴놓은 화지에 이런 그림자가 놓여 있습니다.

 

 

모두 깜짝 놀랍니다.

" 순심이 그림자야?" - 우아한 그레이 하운드는 제 이름에 딱맞는 순하디 순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천정에 매달린 조형물이 비스듬히 이런 그림자를 던져 놓았습니다. 우연히.

 

외계의 사물과 내 마음에 일어 나는 심상은 때로 공시성을 지닙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순간을 쾌재를 부르며 붙잡아 이를 통합하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요.

 

순심이는 등에 커다란 반점이 있습니다.

 

작품을 하는 동안,  무수한 상념들이 오갑니다.

과거, 시간의 흐름, 현존재, 외부와의 갈등,이런일들이 무의식 안에서 통합 되면서, 내면의 자아에 잠겨 들 수 있습니다.

 주체적 개성 individuality을 찾게 됩니다. 그때 느끼는 감정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소망 성취( wishfulfillment) 입니다.

 

저는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 없이 화실에 놀러 갑니다만,

숲 주인은 조용히 제 옆에 그림 재료 들을 갖다 놓습니다. 마치 개껌에 순종하는 순심이 처럼,

무언의 명령에 자동적으로 끌려, 그가 내민,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들, 목탄, 크레 파스 .. 영화 '영원과 하루(Eternity and a day)' 음악..

 

 

 

 초등학교 다닐때 피카소파스라는 크레용 상품이 있었습니다. 피카소가 공산주의자라고 정부에서 통제 하는 바람에 피닉스 파스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 제품은 곧 사라지고 그 후는 왕자파스라는 다시 촌스러운 이름의 제품을 썼습니다.

피카소가 어린아이들에게 ,나쁜 사람, 인 것으로 인식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한 정신개조가 가능하다고 보는 올드패션드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피카소의 입체적  손의 모양과  무언가 쥐고 싶은 , 그러나 간절함과 달리 불끈 쥘 수 없는 , 허망함,,, 그런 자아의 모습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길지 않던 시간에 경험한 자기안에서의 여행입니다.

 

http://www.artsoo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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