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artsoop)이야기

29.퀼트Quilt 를 만드는 법*

torana3 2014. 7. 7. 10:16

지난 토요일 당직하고, 교통편이 잘 맞아 숲화실에 좀 이르게 도착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둑한 실내에 맨 처음 들어서서, 불을 켜고, 수조에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미쳐 치워 놓지 않은 전날의 모임의 흔적, 남은 간식거리나, 구겨진 맥주 캔... 들을 둘러보면서, 그 친숙한 냄새가 좋습니다.

 

저는 오래된 멤버라 , 선생님들이 안계실 때는 미션없이 작품구상을 시작합니다.

그 주에 아이들이 했던 작업을 보거나, 책상에 놓인  그 주의 이슈가 된 전시의 팜플릿, 화집.. 들,

그리고 구석구석에 쳐박아 놓은,  재료- 쓰레기에 가까운 -들을 수색합니다.

 T 군의 마블링이나, 스케치북의 겉장 두터운 마분지에  S군의 추상 유화작업.

 

Oil painting  이라고 써서  유화물감을 모아놓은 구두상자, 딱딱해진 브러쉬를 세척통에 담그고

, 빠레트 대신에, 패션 잡지의 맨들거리는 화보 사진을 찢어서 쓰면 되고

말라서 안열리는 튜브의 뚜껑을 열기위해 펜치도 갖다 놓습니다. 모든 일이 아 주 친숙합니다.

집처럼 편안한, 거슬림 없는 , 순조로운 이 장소, 이러한 시작을 즐깁니다.

 

깊이 슬픈 마음입니다. 더 이상 매달일이 없으면, 아주 고통 스럽지는 않으나, 무지근한 아픔이, 멍한 느낌이 지속 됩니다.

아니쉬의 , 프란시스 베이컨의 hole을 생각합니다. 큰 숨을 쉬고, 잠시 명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동공, 그 작은 구멍, 생각의

바다, 우주로 이어지는 입구 시작,  바깥의 소란함으로 부터,나를 감싸 안고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가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문이 벌컥 열리며 김선생님이  화사한 분홍 여름  원피스 차림으로 환한 빛과 함께  들어 섭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어제, 심야 영화를 봤거든요, H와, 그리고 그녀의 근황을 들려줍니다.

새로 오픈하는 매장과 그간의 난제들을, 그리고 그레이스 모나코에 대한 촌평이 순식간에 쏟아지지만 , 한마디도 제 관심을 벗어나는 주제는 없습니다.

 

뒤이어 방학을 해서, 더이상 나가지 않아서 좋다면서 오랜만에 만난 T군의  체중 감량에 대한 성공담을 듣고  축하합니다.

조금 후 Y 씨 카톡 메세지, 지금 몇명? 커피 몇 잔 필요?? 답 주고.

그녀가 들고 나타난 캐리어 안의 커피는 딱 취향에 맞는 네가지 종류입니다. 스페시픽 오더를 굳이 안해도 됩니다.

그녀의 아픈 발목에 대한 히스토리를 듣고, 커피와 그녀가 들고온 간식거리에 대한 몇마디 추가 촌평

 

T군의 마블링에서 발견한 이러저러 한 형상에서, 그리이스 신화와 메두사와아테네와 아틀라스,

최근 소개 받은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들의 이성관, 결혼 문제에 대한 생각들...그러는 동안

제 그림도 쉼없이 진행 되고 있습니다. 커피를 진하게 개어서 뿌려 보라고 가져다 주고, 브러쉬를 이용하는 다른 방법 참견,

김 선생님은 문득 그림을 들고가  벽에  세워 두고, 감상, 추가 이미지 발견하기...

 

숲의 대화는 이렇게 듣는자와 말하는 자의 구분이 없어집니다. 주제가 연달아 바뀌어도 의식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끼워 넣고, 남의 이야기를 방해 하지 않습니다.

 

 나의 퀼트가 완성 될 무렵,  한 남자가  들어 옵니다.

막 일을 마치고, 들렀다는 , 초창기 인터넷 동호회 멤버이며, 법전공에 컨설팅 회사를 하고 있다는 그도,

특별한 소개 없이 대화 중에 알아낸 가벼운 신상이지만, 실은 그 아무것도 대화하는데 중요한 일들은 없습니다.

그가 겪은 최근의 일상들이,, 버거웠을 것이고... 그러나, 사연을 우리의 조각 이불에  기워 넣는 동안에 .. 내려 놓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직 오른 쪽에 여백이 남아 있는 미완입니다. 이번주에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채워지겠지요

 

                                                              처음에   저 혼자서, 무심히 찍어 누르고 있던 중, 마음의  조각들입니다.

 

* 제목은 위노나 라이너 주연의 " How to make an American quilt" 에서 차용했습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그의 언니가 방문합니다. 두 자매는 완전히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데

예를 들면 언니가 자기의 이웃에 사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이가 둘 다 병에 걸리는 불행을 겪고 있다 하자

동생인 몽상가 리즈는" 그 가족에게 신의 은총 grace이 필요하네.." 하자

현실주의자 언니는 " 그집에 casseroles- 손님 접대용 큰 소스팬- 이 필요해"

하면서 그 식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웃들이 자주 방문하게 될거라고 말했답니다.

리즈는 , 신의 은총이 바로 그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할 뿐이며, 서로 이해하는데에 문제 될 것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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