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에땅 도네

torana3 2022. 12. 5. 11:21

느끼고 생각하는 정신은 끊임없이 그 특성이 변화합니다.

어느 시기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 난 이후에는 ( 사실, 그 즈음 그러한 방식의 변화가 예견되고 경향화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러한 방식으로 감각하고 인식 하게 됩니다.

화면畵面(Picture Plane  원근법에 의해 그려지는) 은 르네상스 시기에 회화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됩니다.

 그림 면이 층을 이루며 투시 하는 회화의 방식이,인상주의 Impressionism  모더니즘Modernism 에 이르면서 그 방식이 파괴 되었다고 하나,   화가들은 여전히   화면을 선호 합니다. 

 

대상은 내 앞에 펼쳐집니다. 

우리는 그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Frontality) 

가까이의 정경을 바라보고, 그뒤에, 옆으로  대상들은 나의 시각앞에 배열 됩니다.(투시- perspective)

그러한 2D/ 3D적으로,  '보는 것'이 ' 보는 행위' 라는  정신의 인식은 당연한 것으로 경험됩니다. 

(또는 경험 되어 지도록, 정신의 명령에 따릅니다)  

그것이 현실이고 논리정연하며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Alberti's Window 

 Alberti는 단일 관점 관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킵니다. 그는 캔버스에서 공간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그것을 보는 특정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Alberti에 따르면 그림을 볼 때 마치 창을 통해 보는 것처럼 3차원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Albrecht Dürer의 그림은 Alberti의 이론을 더 설명합니다.Dürer는 3차원 물체를 배치하고 창틀을 통과하는 끈을 연결합니다. 끈의 끝 중 하나는 회화의 이상적인 관점을 나타내는 벽의 고리에 부착됩니다. 다른 쪽 끝은 그리려는 물체 위에, 줄과 그림 평면의 교차점이  캔버스의  해당 지점이 있어야 하는 위치가 됩니다.

Alberti는 또한 창과 캔버스에 그리드를 배치하고  앉은 상태에서 자시의 관점으로 그리드 위에  대상과 그림을 일치 시키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보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 어 지는 것이 실제인가?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정면 Frontality 나 투시Perspective의 관점이 없습니다. 화면 Picture Pain이 없이 특정할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창조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동시대의 화가인 피카소Picasso 1881-1973)와 뒤샹 Duchamp (1887-1968)은  둘다 전 시대의 예술방식을 깨 버리고 새로운 전환을 시도 합니다. 그러나 피카소의 근대적 추상미술은 자기자신, 그림의 모티브, 스타일을 을 추상화 합니다. 

뒤샹은, 화면 자체를 파괴하고 무시 해버립니다. 오로지 보는 것에 대한 , 보는 것의 실제(reality) 에 대한 실험을  합니다.

Large Glass( 1915-1923) 와 그의 사후에 비로소 전시된  Etante Donnes ( 1946- 1966)에 이르러서 그의 평생의 프로젝트가 완성 됩니다.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

Étant donné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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