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특히 정신과 의사의 역활은 무엇일까,
' 현 상황을 이해 시키고 현실을 유지, 지속 하게 도와 주는 일'
요 몇 칠새 고심하다가 저 혼자 내린 결론입니다.
부족한 능력을 독려하여 성취 시키는 교육이라든가, 진정한 행복을 알게 해주는 종교,
또는 고난을 해결해주는 사회 개혁가 의 몫과는 다른데도,
우리 자신 그러한 역활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 정신적 건강이 완벽한 행복에 대한 환상과 구분하기가 어려운 때문일겁니다.
물론 궁극의 목적은 그에 닿아 있을 수 있지만,
본래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capacity가 일시적 장애로 멈추어 있다면 그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 주는 것일 뿐,
사람 자체를 멋지고 훌륭하게 사회적 적응이 가능한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줄 수는 없습니다.
병의 요해불가능, 기괴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가족은, 앞날에 대한 예시를 듣고 싶어 합니다.
처음 전문의가 되어, 당시에는 병원의 수가 많지 않았고
지금 보다도 더, 정신질환은 수용의 개념이 컸던 때 지방의 한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멋 모르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 의욕이 앞선 던, 그러나, 현실주의자 여서
불합리한 시스템에 도전해 보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근처의 수용시설에 방문 하여 그 수백명의 환자들을 관리하는 일종의 방문의사의 역활이 주어졌는데,
비판하기보다는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려고 노력 했기 때문에 그 2년후 완전히 지쳐 버릴 때 까지는
어느정도 스스로 합리화가 가능했었습니다.
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처음 병에 걸렸을 때, 주치의에게 앞으로 병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답니다.
그 의사의 말이- 실은 저도 알고 있는 대학의 유명하신 분- 고치기 어려우며 평생 갈 수도 있다 고 했답니다.
아직 젊었던 아버지는 나머지 가족들의 삶을 생각해서, 그 아들을 수용시설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면서
그 의사의 냉정한(?) 설명을, 원망하는 투였습니다.
나이들어 회한의 아버지가 , 의사에게 투사하는 기제 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날, 아직 젊은 저는, 어쩐지 그 아버지의 말을 오래도록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 후에 서울 근처의 다른 정신병원으로 옮겼는데, 처음, 나 혼자 모든일을 좌충우돌 해결해야 하던 그 환경보다는
동료 의사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서 피드백 받아가며 즐겁기도 하던 분위기 였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첫 발병하게된 20대 초반의 남자아이의 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그 아버지는 예후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한 참 위 연배이신 선배 의사에게 제 불안을 토로하니 그분이
" 미리 가족을 실망 시킬 필요는 없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상황을 알아 가게 될 것이다, 그 편이 낫다"
고 하셨습니다.
그 후 수많은 경우들을 겪었습니다.
저는 후자의 방식으로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마음의 고통을 더해 주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모든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극복해서, 현 상황에 만족하고 적응을 했던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나 저나, 같이 수없는 기대와 실망을 하면서, 결국, 잔잔한 체념을 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적응이라 생각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 하게도,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상처를 주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더이상 보지 않게 되는
분들도, 몇 분, 뚜렷이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운 여름 , 적당히 유들유들하고 게을러진 한 psychiatrist는 이런 일들을 하며 빈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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