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그러나 뒤늦게 정이 흠뻑 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타입. 입니다.
그래서 헤어지거나 새로운 환경과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데다,
나이가 드니, 더 심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지금의 병원에 근무한지가 8년째입니다.
젊어서도 그리 자주 옮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제일 오래 다니게 된 셈입니다. ..
의식하지도 못하는데, 세월이 참 빠릅니다.
지금은 이 일이 아주 익숙해져서, 이맘때, 누가, 무슨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이 어떻게 얼마 쯤 걸려 해결이 될지,
훤합니다.
장점은, 환자들도 익숙해져서, 웬만한 뗑깡부리기는 미리 포기하고,
야단을 친다 해도, 저 그리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저러다 또 풀어 주겠지,
심각한 갈등과 반목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젊은 동료가 새로 투입이 된다면, 적당 주의, 주먹구구식, 학문적 객관성이 모자라는,
많이 답답해하고 항의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들, 그 새로움이라는 것이 결국 일상의 한부분이리라, 유들유들하게 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꽤 긴세월 동안, 보통 세상 사람들이 겪는, 그들에게도 일어나는 삶의 부침들을 같이 겪습니다.
자식이 결혼하고,또 2세들을 낳고, 보호자가 사업이 망하여 잠적해 있다가, 다시 재기하여
나타나서 전처럼 후한 물품을 제공해주고, 부모가 아프거나 죽고, 가족이 지쳐 보러 오지 않는다든가
뒤늦게 가족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정성을 다해 주는 해피엔딩도.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의 면담은, - 병은 미뤄두고,
그래 그 아들은 소식이 있어요?, 아픈 것은 어떠세요, 더위에 어떻게 지내셨는지, 손주 분은 잘 크죠? 이럽니다.
그녀는 그림에 소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봐도 감탄 할 정도, 병실의 게시판에 붙이는 알림 인쇄물도 예쁘게 만들어 주고
다른 친구들의 네일 아트도 감탄 스럽게 잘합니다. 틈만 있으면, 죽겠다고 몰래하던 제스처들도 많이 줄었는데,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사회에서 아티스트로 인정 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랑 더불어 사는 이 잠깐의 찬사, 위안, 또는 행복이 언젠가는 꿈처럼 다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봄 날의 햇빛과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빗물이 언 땅을 어루만져 기운을 돋우는 것처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녀가 아티스트로 성공을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과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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