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iatrist

보가트 Boggart

torana3 2013. 5. 14. 17:43

지난 주말 지역에서 열린  소규모의 세미나에 참석했었습니다.

한 연자가 일종의 인지행동치료와 정신분석적 접근이 혼합된 형태의 치료법의 설명과 이의 임상례의 보고를 들었습니다.

젊은 여자분이 반복되는 악몽을 보고하고 , 치료자는 환자의 공포의 성격을 객관화 하며, 탈감작 desensitization 시키는 방식입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보가트를 연상하게 합니다.

 '보가트는 어둠속에서 문 저쪽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놀라게 해줄지 모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내보내면

즉시 보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집니다. " 해리포터의 3rd class 에서 루핀교수의 강의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보가트를 퇴치하는 방법은  강하게 마음을 먹고 집중하여 리디쿨러스 " Riddikulus 라고 주문해야 합니다.이때  과거의 공포인 보가트를 우수꽝스럽고 즐거운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는 어떤 것으로 상상해내야 합니다.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전쟁은 대개 정신의 문제를 암시하는 , 즉 삶에 있어서의 투쟁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 , 나이별로 겪는 정신적 어려운, 소외, 상실, 무력감, 열등감이나 우울, 공포 와 같은 것들을,

퇴치하는 마술을 배우고 실습합니다.  이런 공감이 가능해서 이 시리즈가 그렇게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과학의 이전시대에는 주술사가 의사의 역활을 했었답니다.  대부분의 다른 의학이 과학적, 통계적 공식화가 이루어져

마술로 보일 수는 없겠지만,  정신의학에서는 그런 초자연과, 신화적인 개입이 가능한 것은

아직도 정신이라는 분야의 불확실성, 모호함이 여전하기 때문이며,

전지전능함, 보호, 상실의 보상, 치유와 고해 하고 신탁을 듣기를 원하는  무의식적 소망으로 치유자를 찾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력하며 고민하고 주저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치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현대에서처럼, 지식이나 정보가 공유되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근엄하게, 권위를 내세운다든가 , 위엄을 가장 한다고 해도 그 신뢰와 신봉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쉽게 이상화 idealization했다가 급히 실망하고 평가절하 devaluation 해버립니다.

 

새로운 형태의 치료적 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정적이고 권위적이며 수직적인 요구와 하달이 아닌 일종의 넷팅neting , connect dots , 수평적이며 상호적인 교류,

그러한 관계에서  생산된 가볍고 밝은 기분들, 그러한 감정 상태를 되먹이고, 훈습하는 놀이터와 같은 일이

 루핀 교수의 클라스 처럼 진료실에서 이루어 지는게 필요하지 않을 까 하는 상상입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영화에 나오는 치료자 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고,

선배에게서나 책에서 배운 말들을 어느시점에 적절하게 써먹어야 전문가 다울 수 있을 까

머리속에서  궁리하느라 공감empathy를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거든요...

 

 

이것은 어쩌면 치료자 뿐 아니라 구룹의 리더나, 부모의 역활도 마찬가지 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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