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전주全州가는 길

torana3 2013. 1. 24. 11:38

나의 고향은 전주입니다.

스무살 까지 마치 확대된 나의 외껍질인양, 수족을 움직이는 것 처럼,자유자재로

익숙하게 놀던 그 자그마한 시가지. 굽이돌던 내천, 밭두렁, 과수원...

 

그 장소가 갑자기 그립게 다가온 이유는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이 었습니다.

인터넷에 전주지방의 맛 집을 소개하는 글 들을 서치하다보니, 제가 알고 있는 그 시절 식당은 없습니다.

" 단지, 제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 파이가 자신이 자란 동물원을 추억하는 대사를 빌립니다-

 

1. 어머니 아버지는 특별한 날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의례적 행사셨습니다.

1966년 3월 제 국민학교 입학식. 빨간  등에 메는 가죽 가방 ( 어머니가 란도셀이라고 일본식으로 부르던),

노란 구두. 그시절 시골에서 보기드문 호사지만, 우월감도, 부족함도 못 느끼게 키우셨던 부모님의 여유로움으로

저는 그저 선명히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식당.

육식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즐겨 가시던 골목안에 설렁탕과 우족탕을 끓이는 오래된 식당이 있었습니다.

쇠고기 몇점에, 무우 넣고 물을 잔뜩 부어 끓인 양이 우선하는 집에서 먹는 멀건 국이 아니라,

진한 국물에, 머릿고기와 수육이 뚝배기의 반이고, 국수와 다진 파, 저를 위해 늘 주문하시던 작은 뚝배기 한그릇.

그 날, 본 영화 '하숙생'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남자 주인공이 언덕길을 걸어 페이드 아웃 되는 마지막 장면만 또렷합니다.

 

2. 천변에 평상을 깔고 뚝배기에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여내는 ' 오모가리탕' 도 유명합니다.

오모가리가 그릇 이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천변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었는데, 아버지가 고보에 다니시던 일제 강점기에는 벚나무가 있었으며,

꼭 일제의 잔재를 없애겠다고 그 아름다운 벚나무 고목들을 잘라 없애야 했는지 비판하셨습니다.

저도 지금도 그러합니다. 사상과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자체의 美를 파괴, 없애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저도 화를 내고는 합니다.

매운탕을 먹고, 한벽루에 올라가,  여름, 저녁 강 바람을 쏘이던  그 날들...

 

3. 어머니는 집에서 정성들여 끼니를 내지는 않으셨지만, 솜씨가 전혀 없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나 이모님의 음식 맛은 훌륭하셨고, 가끔 일제시대 가사 시간에 배운, 요리에 멋을 내시면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아무튼 직장 생활을 하셨기 외식을 시키시는 일이, 당시의 다른 집보다는 잦은 일이었는데,

그 집. 당시 미션계통의 병원에 외국인 의사들을 위해 고용 되었던 요리사가  시내에 낸  양식식당이 있었는데,

크림 슾, 오븐에 구운 닭요리, 향긋한 갓 구운 빵이 천상의 맛 같았습니다.

상호가 실로암이었고, 성경의 지명이라는 것도 조금 자란 후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4. 가장 큰 시장은, 성루가 남아 있는 남문 근처에 있었고, 시장 보러 가는길에,

솥 뚜껑 뒤집은 철에 기름 두른 수수 전병하나씩 얻어 먹거나, 유명한 한지 상가를 지나면

화교가 운영하는 제일 큰 중국요리집 아관원이 있었는데, 특별히 요리를 시켜 주시기도 했지만

어린시절, 순전히 자장면을 먹이느라, 멀리 걸어 나온 적도 있으시며,

식탐이 많았던 제가" 한입 달래도 가리고 혼자 먹더라" 며 아버지가 흉을 보셨는데,

솔직히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그 욕심 마져도 귀해 하셨던 부모의 관대한 애정이 좀 과장되게 표현 되었지 않나 의심 됩니다.

( 나중에 우리 형제들이 배우자를 선보이는 자리를 어머니 아버지는 꼭 이집에서 자리를 마련 하셨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5. 이 집이 이렇게 유명 해질 줄 몰랐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 미전 준비로 늦게 까지 남아 있다가 나중에는 입시 때문에 야간 수업을 하던 때,

학교앞에 칼 국수를 만드는 분식집이 있었는데, 쫄깃한 국수 발을 직접 기계에 뽑아서, 큰 대접에 넘치게 ,

뽀얀 멸치국물에 계란 김가루 들깨가루가 풍성하게 올라와, 그 고된 시험준비가 상쇄되고도 남을 추억의 맛입니다.

 어느 종합병원에서 근무 할 때 고향에서 수련했던 후배가 수련시절에 일부러 차를 몰고 가서 먹을 정도로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도 놀랐는데,

전주 맛집소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을,, 사진으로만,, 눈을 감고 그 맛을 기억해 음미합니다.

 

6.전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이라는데, 제 어린 시절에는 실은 그리 즐기지 않았습니다만,

그 날,  그 해 유난히 많이 탈락시켰다고 걱정하던 의사 시험 결과를

먼저 고향에 내려와 있었던 저에게 합격소식을 미리 알고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와 전해 주던 클라스메이트인 그가

(그랬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아버지가 크게 반겨, 치하 하셔서, 그 이른 아침, 나가서 밥 사주라고 허락 하셨던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콩나물 국밥 집도, 아, 중요한 장소네요.

 

슬프고 괴로운 기억 들은  사건은 잊혀지고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만 남아 있어 이유도 알 수 없이 괴롭기만 하지만,

즐거운 일들은 사진 처럼 또렸이 , 고스란히 되살아 납니다.

제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 아이들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을, 어떤 장소, 어떤 음식으로 보고 느끼고 맛보고 있는 것일까,

 

 

     고향 이야기에 올릴 적당한 그림과 사진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잃어버린 시간 찾기는 아직 마음이 안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이야기를 같이 올리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해서 잘라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만난 스노우 맨. 날씬한 몸매 지상주의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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