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성함이 무엇이었던가...영자인가 그런 이름.어머니의 먼 친척 동생쯤 되었는지,
이모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오신다고 어머니가 말해주시면, 저는 동네 어귀에 나가,
먼 신작로 끝쯤에 사람의 그림자가가 나타나기를 ,
누가 집을 짓다가 쌓아놓은 흙더미가 그대로 방치되어서, 우리들이 오르락 내리락 미끄럼도 타느라
단단히 다져져 조그만 언덕 같이 생긴 그 위에 발돋음 하고 서서.
노래 처럼, 영자이모가 온다, 이모가 온다...
(.. 그 언덕. 이치理致박사. 카이젤 수염을 하고 단장을 집고다니며, 하는 말마다 이치에 맞다해서 동네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아내와 아이를 동시에 잃고 광인이 되었다고, 동네 사람들이 가끔 밥상도 차려주고, 돈도 찔러 넣어 주던 그분이 그위에 올라가서 일장연설을 하면
어른들이야 무심히 지나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옆에서 미끄럼도 타고 쪼그리고 앉아 그 비장한 웅변을 흉내내고 따라 다니던)
저는 집안의 가장 어린 아이 였지만, 그리 아기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냥 내 던져져서, 동네 쏘다니다가 때 되면 들어가 부엌 찬장 뒤져 밥 먹고, 아니면 이웃 누구네 밥상머리에 붙어있다가,
꽁보리밥, 신김치를 맛나게 얻어 먹고, 먼지 뒤집어 쓰고 그렇게 자랐습니다.
나를 사랑들 하시는 것은 분명 하였지만, 왜 그랬는지, 전적인 보살핌들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떼쓰고 어리광 부리는... 그런 아기 노릇은 .. 그래보지를 못했습니다만
그분은 아마 여성스럽고, 푸근하며, 저를 아기로 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이모가 오셔서 저를 빌리셨습니다.
그곳이 어디었는지, 차를 탔는지, 어떤 군인 아저씨와, 면회를 갔었는지, 그저 데이트였는지
쑥스럽고 어색한 두 연인은 서로간 대화 하기보다는, 나를 귀여워 하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그 로맨틱한 분위기가, 어쩐지 좋아서, 그저 신이나서 까불고, 그런 장면 만 기억이 납니다.
철길의 선로위를 모듬 뛰기도 하고 코스모스 꽃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 나들이의 즐거움이 나중에 본 영화의 장면들에 오버 랩된 기억의 조작인지도 모릅니다..
그 신작로 길, 땅이 풀려 아지랑이가 오르는, 아니면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길따라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먼 나들이를 가는... 그런 꿈을 잠시 꾸어 봅니다.
단단하게 포장된 언덕길을, 아픈 무릎을 잠시 쉬어 가며 오르다, 침침한 시력으로 먼 찬 하늘 끝에 눈길을 주다가..
그랬습니다.
이래저래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모습이며 감정이며 생각이든, 각자 뿌리 내리고 삽니다.
같이 모여 있어도 됩니다. 손을 잡아도 되고 놓아도 됩니다.
왜 그러니... 할 필요는...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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