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들려 주신 이야기.
어느날인가 박동진 님의 소규모의 판소리 공연이 있었는데,
40여년전, 지방에서는 드물게 사회활동을 하시던 어머니가가 유일한 여성으로 그자리에 있는 것을 발견한 명창이
" 여성 분이 계신 줄 모르고 실례 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답니다.
그만큼 내용은,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말과, 음담들이어서
그러나 어머니는 고전문학을 전공 하시던 터라, 전혀 개의치 않고, 즐거웠었다고, 언젠가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난장 , 사설을 듣기 시작한것은, 꽤 유명해지고 나서, 숲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주인장이 배경으로 깔아 놓는 음악 대신, 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조크를 좋아 합니다. 게다가 기발하고 명석한 그런 조크라면,
제임스님이 하신 말씀대로 ..instructive comedy, 의미 있는 드라마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그들의 말투가 비속어라는 것으로 공격을 많이 받지만,
우리 마당극, 패거리 놀이가, 허울과 가식을 벗어던지는 해학, 한바탕 웃어 넘기면서,
인간의 다른 속성, 순수함을 드러내는 카타르시스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틀전 마지막 방송에서 예견이라도 하는 것 처럼, 격정적인 속내를 보였을 때,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저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 하지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어쩐지 어떤계기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일.
그러나 그 순수성은 훼손이 되고 오해를 받고, 엄청난 공격이 쏟아 졌을 때
그 보다도 자신들이 그렇게 보호하고 싶어 했던 , 소위 사회적 약자들 마져도,
외면하고, 권력의 곁에 서서 같이 손가락질 하는 수모를 , 견디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도스토엡프스키의 말대로, 선과 악의 혼동에 있는 인간이 자유를 얻기에는 그 댓가가 너무나 크며,
신의 선 God's Goodness을 이룬다는 의미는 논쟁argument이 아니라, 서사이며 narrative,
신이 자신의 선benevolence 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갈등속에서 계시revelation,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아무것도 미리 결정 할 수 는 없다, 단지 일어난 일에 대한 어떤 선택을 할 뿐이다, 라는 간달프의 말이나..
왜 그랬냐 할 게 없습니다. 이들이나, 그들이나, 그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투쟁의 결과는 또 같이 감수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멤버들의 창의적이며, 의지적인 이 놀이에 대해, 경의를 보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소녀시절, 늘 흥얼거리던 이 음조... 여기에 부쳐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가 된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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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당분간은 이십대의 나날 처럼, 눈도 감고, 귀도 막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