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겨울 - 율리시즈

torana3 2012. 12. 11. 09:42

캘빈- 제임스님이 칼뱅이라고 본래 정확한 발음을 일러주셨지만, 우리가 늘 쓰는 대로- 은 요즈음 산타에게 어필 하기 위한 편지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디어 산타 왜 당신의 본거지를 북극에 설치하셨나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싼 요정 노동력, 환경기준이 낮고 세금 감면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분명, 우리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셋팅하신것, 맞지요, 하우브즈에게 편지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산타가 내가 착한 아이인지를 고려할 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저는 이 시즌이 되면 잔잔한 기쁨이.. 마치 스물거리듯, 기쁨이 새어나오는 , 매년 그렇습니다, 제가 태어난 그 날, 그해들어 처음으로 눈이 많이 내려 어머니는 제 이름을 초열 初悅이라 생각하셨답니다. 그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기뻤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같은 여자 고등학교의 교사로 만나셨을 때  두 분 모두 사별후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고 계셨는데, 소녀 제자들은 두 분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꾸면서, 교무실에 적혀있는 교사들의 이름에  어머니의 성에 한 획을 그어 넣어 아버지의 성으로 만드는 장난을 했고 몰래 한 약혼이 들어 났을 때, 다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깜 짝 놀랐고, 어머니를 흠모하시던 다른 교사 한 분은, 낙심하시면서 원망하더라고, 나중나중 어머니가 수줍게 말씀 하셨습니다. 두 분 결혼이 마냥  순탄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운명이 사람의 의도에 무관하게 저혼자  굴곡되고 비틀리고 휘두르는 탓이었으며, 제가 대여섯 쯤에 어머니는 어떤 이유로 크게 아프셔서, 수업중에 고개를 들 수도 떨굴수도 없었고 포장도로을 걸을때 머리가 울리고 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휴직을 하고 어두운 골방에서 누워 지내거나, 머리에 수건 한 장 두르고 먼 길 걸어 천변에 용하다던 한의사에게 침 맞으러 다니는데, 저는 집에만 있고 저를 데리고 외출하는 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 다녔다고, 어머니의 절망과 어린 딸에 대한 연민으로 그리 이야기를 해줄 때도 저는 아련하게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그나이 쯤에 꾼 꿈을 기억 합니다. 빨간 장미 꽃이 생생히 피어있는 위에 눈이 하얗게, 수북히 쌓여, 저는 잠에서 깨어나  마당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최초의 꿈이 아니라 너무도 오랫동안 심상에 남아, 그 후로도 웬지 꿈에 눈을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저만의 꿈풀이를 가지고 ,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려서 그리 기뻤던 것 처럼, 나이들어 죽어 가는 길에도 그러한 어린아이의 기쁨을 가지고 한동안 살다 갈 수 잇으면 좋겠습니다. 워즈워드 처럼, 무지개를 보면서 어린시절 만큼 가슴이 뛰거나, 피츠제랄드의 벤자민 버튼 처럼, 거꾸로 시간을 돌려 어린아이가 되어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잠깐 놀아 주는 것으로 만족 하기로, 내가 지나가면 전과 다른게 알은체하고 잠시 애교를 부리다가, 무정하게 돌아서는 저를 그냥 놓아 줍니다. 아마도 눈이, 이 아이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지도... 신통하게도 자기집 근처에서는 오줌도 안싼 답니다, 방광이 탱탱해지면 끙끙 거려서 소변 보러 , 운동장으로 데려가야 한답니다 제생각에는 자주 오줌 마렵다고 핑계대고 끙끙 거릴, 수도 쓸만 한데, 하루에 한 두차례만, 수고를 끼친답니다.. 기특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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