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지하철에서.
최근 피로감, 근육통이 나아지질 않아, 염치 불구하고, 비어있는 노약자 석에 앉아,
- 부쩍 늘어난, 흰머리, 지친표정, 한숨들이, 다른 승객에 어필되기를 바라며-
있는데, 앞 좌석에, 참 예쁜 노인 한분이, 단정하게 자리 잡고 앉으십니다.
약간 헐렁한, 구식의 회색 슈트, 안의 조끼와 타이, 잘 닦아 윤이 나는 구두까지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리고 꼿곳한 자세로, 책을 펼치는데, 언뜻보니까, 경요 장편소설 물위의 사랑 입니다.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에서, 흑백의 화면에, 분홍 처리를 한, 유태인 소녀의 장면이 연상 됩니다.
회색의 도시 전 철 안에서, 생경스러운, 고운 빛깔의 스팟라이트spotlight.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은지가.. 꽤 되었습니다...이전의 감흥이 쉬 잘 안살아나서.
90년대 초, 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 Basic Instict) 이 국내에 상영 되었을때,
- 지금은 환타지라는 허울을 쓰고 더욱 잔혹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난무한 영상물이 보통이지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성애의 묘사와 폭력으로, 논란이 많았는데,
마광수 교수 - 그도 자유로운 성의 담론의 펼쳤다가, 시대적 몰이해로, 고초를 겪었지만-
는, 그 영화를 검열 하는데 있어서, 성애의 장면을 다 잘라내고, 폭력만을 그대로 두었다면서, 격하게 항의 했습니다.
왜 성애가 폭력보다도 사회적 위험이 크다고 보느냐는 견해 였지만, 아무튼, 그분이 혼자 분투하시다가..
요새 세상 같으면, SNS의 적극적인 지지와 위로를 받으셨겠지만,, 교수의 자격까지도 상실하셨던 .. 아마 그러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까지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로맨스입니다.
햄릿은, 오필리어의 눈물을 외면하고 , 리어왕은 독신에, 가장 사랑스러운 딸 코오델리어의 진정성을 알아 보지 못해,
오델로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해서, 그리고 맥베스는 여성성을 상실한 배우자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전철에서 보았던, 그분.. 아마 사회생활을 소위 성공이라는 것은 못해 보셨을 지라도,
타인에게, 피해는 안 주셨을, 그리고, 여생을, 그리 큰 감정의 폭풍없이 잔잔하게.. 보내실 수 있지 않을 까..
문이 열려 내리기를 기다리는 뒷 모습을 보면서.. 혼자 상상해봅니다..
네, 여성성은 위대합니다!!!
비가 그쳐서 오랜만에 뒷산에 올랐습니다.
복숭아 과수원, 곧 꽃이 만개 할 겁니다, 붉은 기운이 감싸고 있습니다.
이상李箱이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이다고 묘사한 시 처럼, 이 소나무들, 씩씩 한 군인들이 도열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나요.
역광임에도 불구하고, 지는 햇 빛을 받아 아스라히 번짝거리는 산책길을 찍어 보았습니다.
추위가 너무 오래 머무른 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몰라도, 이 나무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때를 기다립니다.
여름의 푸르름과, 가을 의 풍성함, 그리고 겨울 추위를 견뎌낸, 억새풀이 부드럽게 감싸주는 사잇길에서 잠시 시간을 보냅니다.
산수유 꽃망울 입니다. 지난 가을, 세가지 색상이 어울어진 단풍을 그렸던 바로 그자리,
솔 잎 한줌을 따가지고와 책상위에 올려놓고, 그 향에 취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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