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지3. 자기분석

torana3 2022. 6. 10. 09:07

일기와 다르게 일지라 함은 달성하려는 목표의 진행 과정이나,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 하기위한 루틴을 수행해나가는 기록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아, 해방 일지의 흉내입니다. 

불편하고 음울한 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침의 루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2일째 산책을 나섭니다. 날이 훤한데도 남편은 혼자 산에 가는 일상을 반가워 하지 않습니다.( 주중 따로 지내고 있습니다)  나의 독립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심하고 보수적인 성향에도 불구 하고, 저는 혼자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시작은 10세 이전, 1960년대 후반입니다. 다 같이 풍족하지 못하던 때라 오히려 서로간의 경계가 없었을겁니다. 그로부터 10년후, 부산 에서 일어난 유괴 사건 이 신문 사회면의 매일  톱 뉴스로 떠 올랐고 부모들은 어린 자식을 강박적으로 챙기고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에 대한 공포와 편집이라는 집단 심리 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미 아동기는 지났던 때라 나의 인격형성에 그다지 개입 되지 않았습니다. ( 국민이  흉악 범죄 사건에 공분 하며 정치나 사회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는 의도적 장치 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어린 시절 부터 아무 간섭 없이 많이도 쏘다녔습니다. 오랫동안 나의 상상세계는 그렇게 구축되고 유지 되었으며, 

때때로 통제 되지 않는 도전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만사 불여 튼튼, 계산이 능한 사람의 보호본능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험을 감지 하고 방어하는 직관이나 통찰은 같이 발달합니다. 네, 충분히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서 분리 독립이 수월치 않는 것은 왜일까, 

자기가 살아 온 방식으로 살아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작용 반작용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대는 , 다른 인격체이며 다른 시대정신으로 살았고 ( 신영복의 말에 의하면 부모가 아닌 시대가 자식을 키운답니다) 유괴와 사회적 공포와 분별과 베스트를 가리는 경쟁 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에 대해 무심하게 자라온 나, 라고 할지라도, 그 다른 인격체가 요구하는 공포를 달래고 위로 하며 안심 시켜주는 무한 보호 의 신뢰를 주지 못한 것 - 아마도 사랑이 부족 해서 가 아니라, 부재에 대한 예기 일겁니다- .으로  부족함과 상실감입니다. 

 

 산을 내려 올 즈음, 자연 속에서 머무는 치유력을 느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 공간에서 의 삶에서는 그 정신의 자양분을 어떻게 공급 받을 것인지, 이미 인간의 뇌가 자연과의 교감을  필요 하지 않을 정도로 진화 되어 버린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안을 정리 하고 느긋하게 출근길에 나섭니다. 버스 정류장, 까가운 아침 했살이 데워지기 시작하는 인도의 블럭에  지렁이 한마리가 홈을 따라 힘겹게 기어 갑니다. 얼른 전단지 한 장 주어다가 하수구의 격자 덮게 안으로 떨어 뜨려 줍니다. 미래를 예측할 지능이 없는 지렁이는 , 위협을 피하려는 듯 한 껏 움추렸다가 맨홀 안으로 사라집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 까, 나의 구조로 인해 그의 생명이 일시적으로 연장 되었다 한 들, ..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지 7. 비워내기  (0) 2022.06.21
일지 5. 돌아가지 않는다  (0) 2022.06.16
일지 2. 산에서 길을 잃다.  (0) 2022.06.09
여름 초입  (0) 2022.06.08
구보驅步 의 한 낮  (0) 202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