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artsoop)이야기

거기에 있었다

torana3 2022. 1. 17. 12:48

I've been there.

 

같은 장소에 같이 있어 주는 것을 말하며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위로를 하는 말의 상용구 입니다.

 

주말에 오랜만에 숲화실에 들렀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거기 있었습니다. 

화실은  자주 변합니다.  스튜디오 자체가 숲 주인의 예술 세계의 외면화한 작업의 일종이기 때문입니다. 

벽은 엷은 시멘트 택스춰로 페인팅 되었습니다.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낸 아이들의 그림이 걸려있고 ,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마치 심장을 냅다 꽂아 놓은 것 처럼 보입니다. 

창가에 심어 놓은 유자 나무에 열매가 매달려, 언젠가는 수확하여 차로 나누어 마실거랍니다

풍화 되어 말라버린 아크릴 물감 은 튜브 납 껍질 벗겨서 , 원색에 누름 자국 그대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숲주인은 밑도 끝도 없는 사설을 늘어 놓습니다. 많은 것을 생략하는 어법이므로 섬세하게 듣지 않으면 해석이 어렵지만  그러나, 오랜 우정으로 맥락을 놓치지 않고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 삶은 저항과 같이 간다"

" 감각은 변화 한다. 우리의 익숙한 감각들 대신에 , 인터넷 감각이 세상을 지배하며, 생각이란 사라져 가고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철학적 사색은 고대 희랍 철학자 들의 말처럼 빛 바랜 고서의  죽어버린 문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드로잉으로 꿈을 꾸고 존재를 확인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오프라인에서 만나야 한다고 여전히 힘주어 말하십니다.

 

오래된 시계 그 규칙성.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불균형
화실의 제일 가는 모토Motto는 자연주의 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거부 하는 분노가 마치 파편 처럼 벽에 붙어 있습니다.
" 많이 정리 되었지요?" 숲 주인이 히죽 웃습니다만, 주변인들의 성화에 대부분을 처분 하고도 실은 이렇게 messy 합니다.
추운 나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고국에서의 학업을 이어 갔지만, 실망하고. 결국 돌고돌아 예술을 하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어쩐지... 당연합니다. '버섯 인간 처럼 쉬고 싶다.' 저더러 유토 항아리를 가져다 작업 해 보라 했지만, 이 작품은 당분간 그대로 둬야 할 듯 합니다. 어쩐지 항아리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나오고 있는 듯 보입니다.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아이들이 다 성장하여, 마치 시원의 장소를 찾듯이 다시 옵니다. 돈을 벌면서, 계속 예술을 해 보겠다고 했답니다. 역시 또 당연합니다.
마른 아크릴 튜브를 오래 주물러서 나온 형상이 천수천안 관음 보살 상입니다. 그냥 나왔습니다. 제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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