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iatrist

연륜

torana3 2021. 11. 18. 10:14

시골 버스는  한시간 쯤 기다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터미널의 카페 사장님은  낮동안 소일 거리로  책을 주로 보시는데, 가끔 빌려 주시기도 합니다. 박웅현 컬럼리스트의  여덟단어라는 책에서 발견한 글귀.

"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어제 집단 모임에서 한 환자분. 

세상과 가족과 그리고 병원에 대한 부조리함과 불만을 터뜨립니다. 

폐쇄적인 정신병동에서 흔히 겪는 일입니다. 

그가 여기에 오게된 수 많은 상황이 있지만, 맑은 정신으로 의사와 병원의 문제점에 대해 

' 옳은 소리' 를 하게 될 때는 할말이 없기도 합니다. 

많이 개선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연히 제약이 많고 자신의 문제 점 보다는 타인에 투사하는 대로 비사회적인 인격이라면 

그들이 논리 적으로 말할 때 어떤 말로도 설득하거나 회유하기 어렵다는 것 잘압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면화 하는 것. 그 조차도 쉽지 않다는 것 압니다. 

 자신의 말이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스스로 잘 압니다. 

일개 정신과 의사로서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것도 빈 말이 될 거라는 것, 나 자신도 압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반대로 공격하거나, 너의 문제를 모르느냐고 복수 하지 않는것, 

공격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안심시키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병동에서 만났을 때 게면 쩍게 웃는 그에게, 작은 칭찬이라도 한마디 건네는것으로, 

아무일도 없다는 듯, 지나가는 일상으로 넘기는 것으로, 그는 세상으로부터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을 잠시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기억력도 엉망으로 엉키고 체력이 다해 새로운 방식의 치료를 도전할 기운도 떨어져 버리는데, 

단지 연륜이 쌓였다는 것이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사물의 핵심에 도달 하기 위해 잡다한 현실의 갈등에서 벗어나 그림 그리고 경전을 사경하고 짧은 독서라도 하자고 결심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림 대신에 낙서를 합니다. 일종의 자화상이라면 버려야 할 게 많습니다. 그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함을 다 모아 놓은 것이라.... 망각의 도움으로 지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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