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에,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문화적 행사라고는,
학교 운동회, 명절에 급조하여 동네 돌아 다니는 사물 놀이 패, 교회의 성탈절 행사. 정도?
여름 평상에서 라디오 틀고 , 전설의 고향이나, 재치문답 같은 오락 프로 듣기?
냇가 빨래 터에서 어머니 따라가 퐁당 거리기, 지천에 깔린 풀 과 꽃 뜯어 사금팔이에 소꿉질,
그러고 보니 많군요.
우리집에 남들 다 있는 흑백 티 브이 수상기를 들여 놓지 않는것은, 부모님의 철저한 교육관이나 검소함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어머니의 살림에 대한 무관심 , 게으름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겁니다.
대학원에 다니던 오빠가 군 입대 날짜가 어긋나, 쉬는 동안 시내 입시학원 임시 강사로 번 돈으로 , 티브이를 들여 놓았을 때 아버지는 늦은 시간 까지 즐겨 보셨으니.
그대신 영화 는 원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많은 식구 중 제일 어린 아이였던 저는 , 동반 하기가 제일 만만했던지, 온 갖 다른 취향의 영화를 무분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양육과 집안 살림을 맡아 하던 친척 언니 따라, 한국영화 전성기의 신파 멜러 드라마
아버지는 왕우 출연 중국의 무협영화 ( 환타지에 가까운) , 서부 활극, 나바론 등 전쟁영화
작은 언니는, 물망초, 기적, 전쟁과 평화 , 그리고 훼이 더나웨이의 우수에 찬 파리는 안개에 젖어..
오빠들 따라 스릴러, 오드리헵번 나오는 어두어 질 때까지나 아듀 라미 같은 새로운 장르
어머니는 간혹 자신의 연극무대를 참고 하기 위해 난해 한 영화 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대부도 어머니랑 같이 보러 갔었습니다.
대작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닥터 지바고 등등 , 그 때 집에 있던 가족들 다 같이 보러 갔었습니다.
더 이전의 흑백 영화들, 애수나 마음의 행로 가스등 히치코크의 영화를 티브의 주말 의 명화에서 보고.
그 것이 코로나 19 사태 가 될 때가지 참 긴 세월 제 취미 였습니다.
그 중 인생영화는... 아 어렵다. 라이프 오브 파이(앙리) /인셉션(놀란)/ 대부 시리즈(코폴라)/피아노 (제인 캠피언) ...
요전에 추석 특집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방영하는 것 건성으로 보면서, 잠시 추억에 젖어 봅니다.
류승환 선생님께서 이번 전시에 낸 그림을 이쁘게 찍어 올리셨습니다.
기억에 관한 주제입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날 들은 아마 대부분 , 옛날 기억들을 들 춰 보면서 살아 가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