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을 되돌아 보아 존경 할 만한 스승을 기억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탓일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객관적인 비평을 자주 하시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고 자란 때문에
좀 일찍부터 비판적인 관점에 대한 학습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보편성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태도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좀 모호하고 삐딱한 아이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나이 보다도 훨씬 젊었을 , 그 선생님들을 회상해 보면,
전체적인 인격의 면이 아니라, 그의 교수법의 특이함과, 나름의 열정으로 더 평가를 받아야 하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공립여학교였던 여고시절에는, 학업성적이나 등수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압도적이어서
여성적 감성이나 개인의 사정, 개성이 무시되며, 열등감으로 위축이 되는 그런 구룹에 저도 속해있었습니다.
제 비판성향은 , 수줍고 내향적인 기질에도 불구 하고 , 조금씩 표현이 되고는 했는데,
" 시집을 잘 가려면 이대에 가야해" 라고 부르짓던 그 수학 과목 선생님.
공부를 잘하는 아이 를 사랑스럽게 호명 하고는 해서 당사자도 소름 끼쳐 했던 그분은,
수식을 설명하면서 `~라면' ' 이라는 조건부를 쓰면서- 그것도 유머라고 - ~과자 라고 덧붙이는 매너리즘을 줄창 고집 했습니다.
그 당시는 군사문화가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어서, 칠판에 판서를 가득 채우고는 주번이 나와서 닦는 노동을 시켰는데( 지금도 그러는지)
어느날, 나의 차례라, 나가서 다 지우고는 그 '라면' 이라는 단어만 빼 놓았었습니다.
정말 실수 였는데 ( 프로이드식으로는 무의식적인 의도적 실수) , 순간,선생님은 당황하고,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통쾌해 했습니다.
소심한 저는 한동안 고민 했을 거지만, 아무튼,
조용하고 특색이 없어 사춘기 여자애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그 세계사 선생님은 한달에 한번 유명한 명시를 암송하셔서
사회과목 노트에 정성껏 적고 삽화까지 그리면서 오래 보관 했었습니다.
사포의 시 , 가지 끝에 열린 사과, 따던 이가 잊어 버린 그 짧은 시를 아주 좋아 했었습니다.
또 한분은 ,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친동생이었는데, 화려한 치장과 옷차림, 연극적인 포즈로
아이들에게 좀 놀림감이 되고는 하셨는데, 그분의 국어 수업은 제가 제일 좋아 했었습니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키워주는 , 픽션 만들기를 자주 숙제로 주셨고 영화이야기나 시를 자주 들려 주셔서
특히 당시의 세계문학에서는 열외였던 스테판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의 편지를 각색한 영화 백장미의 수기를 얼마나 아름답게 이야기 해주셨는지,
반 친구인 나의 가장 사랑했던 동무가 암투병하다 죽자( 그아이의 2년여 투병과 거의 매일 병문안을 갔던 그 이야기는 다시 정리하고 싶습니다)
소월의 초혼을 들려주시면서 같이 울었던 그날, 비오는 어둑한 교실의 감성은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그분의 현란한 제스춰를 조롱하던 다른 선생님, 명문대 출신에, 형사 콜롬보처럼, 건들거리는 그 분을
아이들에게 우상이었고 몰래 흠모하는 애들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언젠가 국어 선생님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린애 처럼 울면서
' 나중에 어떤 사람이 교사로 더 기억에 남을지는 알게 될거라고 하소연해서'
아이들은 그 소녀적 감성에 좀 픽픽거리며 비웃었지만,, 이 나이 들어 보니,
인기를 위헤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는 비겁한 인물들에는 식상하며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꿋꿋하게 관습을 타파하던 그 여선생님의 수업이 훨씬 더 기억에 남습니다.
말이 길어 졌네요,
시작은 그 수업 시간의 ~라면이라는 조건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계를 규정해주는 ~라면이라는 조건은, 해답을 만드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지만 때로는 사고의 비약을 막는 장애가 됩니다.
그 좁은 한계의 법칙에 가둬져서. 그 안이 세계의 전부인양, 진리와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많습니다.
한계 자체가 모든 세상일을 다 가둬 줄 수는 없습니다.
그 울타리의 바깥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으며, 소수의 경우라도, 그 부분 까지, 바라볼 수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처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예측불허의 사건이 터져 나올 때는 특히.
이미 디지털을 도구로 쓰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흔해졌습니다. 점점 더 발달 하겠지요, 인간의 뇌는 이런 식의 시각 이미지에 적응해 나갈겁니다.
정신의 새로운 입력 형태입니다. 우리 구세대는, 이런 문제로 신세대와 토론 할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의 언어가 아니라 原始性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겪었던 그 原初 ,野性의 감성과 문명의 뿌리가 기억하고 전해야 하는 , '위대한 유산' 이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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