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로 부터 라깡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사실 라깡에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 기본 용어 조차 알아듣기가 어려워 몇 페이지 이상 넘기지를 못하고,
겨우 이해 했다고 생각하고 인용하려고 하면, 자의적인 해석이어서, 취소 할 수 밖에 없었던.
프랑스인들의 모호하고 감성적인 정신세계란...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 알수 없었던 일들이 문득,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들.
지난번 강의 준비를 하는 중에 나의 어린시절의 그 ' 알 수 없었던' 일.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알 수 없었던 그 것에 대한 느낌 조차 사라져 버려서, 이상하기만 했던 그 사실들에 대해,
문득, ' 무의식의 문이 늦게 닫혔다.. 또는 무의식이 오래 열려있었다 " 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수준의 변화 였던 것입니다.
주말에 아들이 법회에 다녀오고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다음날 만나면 이야기 해주겠다고 합니다.
' 부처님 가피' 에 대한 말입니다.
순간순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피는 수행이다.
어찌보면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말로는 ,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종교적인 심성을 어려서 부터 키워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를 한다거나 깊은 신심을 일으키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것에 열등감 까지 느껴서, 한동안 작심하고, 들어주시기를 간구 하면서 기도의 흉내를 낸적이 있습니다.
물론 소원은 성취 되지 않았고, ' 내가 노력을 안한것으로 하겠다- 미생의 장그래 대사입니다- ' 하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는동안 , 가피가 이루어져, 염원하는 바대로 가게 될 것이다.
사실 같은 상황인데도,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 종종있습니다. 그 평화의 시'간들이 가피, 또는 은혜 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문득 알것도 같습니다..
또 한가지.
언젠가 아들에게, 내가 너를 보지 않고 다른데를 보고 있었구나.. 라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아들은 , 그러지 않았다고 서둘러 위로 했지만,
내가, 어느 어느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가족을 지켜 보려고 애를 썼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데, 그 '본다는 것이', 대상의 실체가 아니라,내소망,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라깡의 책에서 인용하자면
"... 우리들 각자는 우리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의 가능성에 따라 백도 되고 천도 됩니다.
각자가 이사람과 더불어 유일한 사람이 되고, 저사람과 더불어 유일한 사람이 되죠,
이 다양한 유일한 사람은 서로 무척 다르다구요!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항상 유일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있어서 그 유일한 한사람이 우리의 모든 행위 가운데 있다고 믿게 되는데..."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Empathy 라는 단어를, 그 많은 수사를 치우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문득 .
라깡의 용어 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 조차 어려워,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도무지 역자 자신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나 할 정도로
번역 탓만 하면서 읽기를 포기 했었지만, 아무튼 라깡을 그대로 번역 했을테니까, 이번에는 참고 읽어 보려고 합니다.
지식의 축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전히 정신이라는 것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나는 왜 그렇게 흔들리고 초조하고 분노하는가...
그 마음의 불순물들을 걷어 내고 싶은 겁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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