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 서양의 학문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며 자칫, 자의적 해석이 될수도 있지만
의학은 과학이므로 수련중에는 자주 토론을 거쳐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외국어의 고급 언어를 익히는 것 처럼 , 그 사회문화적 집단 무의식에 기초 해야 자연스럽게 수용이 되는
그 프로세스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 , 알듯도 모를 듯 지나쳐 버렸던 그 용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있습니다.
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 하려고 노력했던 ( 곧 시기상조라고 포기하기는 했지만) 프로이드와는 달리
그의 영향하에서 심리학을 발전 시킨 융이나 라깡과 같은 이들은 , 생물학적인 개념보다는 문학/ 철학/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나은 듯 합니다.
미스 트롯을 반복해서 보다가 , 요즘 미스터 트롯의 지나간 회차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중국의 경극이나, 우리의 옛 국극의 배우 처럼 분장하고( 성형까지 한) 남성 출연자를 보는 일이
처음에는 좀 낯설어서, 보다 말다 했는데,
한 출연자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시청하면서, 그 아니마 아니무스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릅니다.
Anima/ Animus 는 Jung 심리학의 용어입니다.
이 노래는 여자가수(백설희)가 약간 늘어지는 나른한 한탄 조로 불렀기 때문에
연인을 떠나보낸 여인의 감성인듯 보이지만 ,
실은 남자 작사자(손로원)가 여인의 마음( 어머니)을 대신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성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득적인 성이나 환경적 요인으로 성정체성gender identity 을 발달 시키고 인지 되지만
인격이라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라깡식으로 말하면 타자를 mirroring 하여 시니피앙으로 자아에 각인이 됩니다.
즉, 최초의 어머니와의 밀접한 관계에서 그 여성성이 자아의 일부를 차지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 경우에도, 어머니나 자매들도 좀 일반적인 여성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주장과 개성을 지녔으며,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제 이상적인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안의 남성성을 오히려 여성성 보다 더 사회적 역활을 수행하는데 유용하게 발달해 왔을 듯 합니다.
즉 아니마/ 아니무스는 신화적인 용어를 벗어나서, 당연히 잠재된 인격의 일부입니다.
자라면서 단 한차례도" 여자가 이래야 한다" 하는 편견과 억압의 말을 듣지 않게 해주신 부모님을 만난 인연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허 목수가 요새 많이 아프십니다. 마지막으로 작업한 새하얀 나무의 속살을 틈에도 가는 톱밥을 메워 매끄럽게 사포질 한 것을
감히 채색하거나 드로잉 하기가 망설여져서 , 마른 소재 몇개를 걸쳐 놓고 파란 새와 두꺼비와 같이 디스플레이 해 봤습니다.
날이 풀려야만 , 산에 재료 찾으러 다닐실 것이고, 나의 목수 수업은 그때나 되야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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