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이 따뜻해졌습니다. 담벼락에 금줄은사시나무가 타고 올라갑니다.
오랜만에 극영화를 골라 끝까지 보았습니다.
저희가 어린시절부터 보편적 진리라고 믿었던 정의 도덕에 관한 교과서적인 영화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용감한 주인공의 신념은 결국 승리 할 것이라고 그런 스토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의 논리, 현실과의 타협,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양비론의 비열함...
온 세상이 그리 돌아가는데,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바보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거대담론에 휩쓸리는 무력하고 왜소한 한 인간을 구원하는 소재를 즐깁니다.
인간은 역사와 사회의 한 낱 부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상자. 실업자. 소수집단. 상대편. 적.마이너리티 의 범주 안의 숫자나 퍼센테이지로 개인이 취급됩니다.
그런 가운데, 마치 흑백영화의 붉은 칼라 (쉰들러 리스트) 처럼 갑자기 눈에 들어 오는 한 개인 삶.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감아 버리는 그 인간의 불행 앞에서 시선을 돌려 버리지 못합니다.
무모하고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위해 희생을 감수 합니다.
도노반은 수입이 좋은 보험계약건을 취급하는 유능한 대형 법률회사의 변호사입니다.
냉전시대 매커시즘의 광풍이 불때, 검거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의 변호를 맡게 됩니다.
그 시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변호는 하나의 민주적 절차를 받는 다는 형식일뿐 유죄 사형언도를 받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만,
도노반에게는 한 인간의 행위에 대해 이해하고 죄에대한 변호와 가벼운 구형을 끌어내야 할 의뢰인입니다.
법에 근거한 이성적인 판결보다는 재판정이나 여론의 강한 압박에 밀린 판결을 뒤집기 위해 도노반은
아벨이 훗날 정치적인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사를 설득합니다.
말대로 소련에 억류된 미군 조종사와 맞교환 이 이루어져 아벨을 고향으로 돌려 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도노반은 장벽이 세워지는 중에 미쳐 탈출하지 못하고 동베를린에 억류 된 미국 대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단지 그가 자기의 회사에 있는 젊은 친구와 같은 나이라는 것에 연민을 느끼며
정치적 타협을 깨버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역시 협상의 대상으로 조건을 내겁니다.
우리가 주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울때,
피고인. 피의자, 죄인, 낙오자, 실패자, 희생양, 비정상인, 장애자 등등.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고 주장할 힘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는 그들의 존재를 놓아 버리거나 잊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편에 선다는 것, 힘이 되어 준다는 것, 사회적 거대 담론에 맞서 그들을 옹호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바보 같은 짓인지, 압니다.
사회정의가 단지 비현실적,이상적이기만 한 행동양식으로 전락한 요즘 세상에서는
나 조차도 그 도움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그리 되지 않을 가하는 두려움을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걱정 되지 않나요?' " 걱정한다고 도움이 될까요?'
아벨과 도노반 두사람 사이의 여러차례 나오는 대사입니다.
초연한 듯한 태도가 부럽기도 하지만, 보통사람인 우리들은, 한번씩 무너지듯 걱정에 휩싸인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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