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iatrist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torana3 2014. 10. 28. 13:06

요전날 산책길에. 남편은 " 솔직하게 쓴 글을 찾기가 어렵다' 고 말합니다.

 

여기서 솔직함이란 실존적 자각이 분명한, 이라는 의미 일 것 같습니다.

남편은- 우리는 클라스메이트 였는데- 학창시절, 글을 많이 썼습니다.

여행기나, 어린시절의 회상하는 수필 같은 것으로, 간결하고도 서정적인 표현이, 한 문장이라도 정확하게 표현 하려고 고심한

아름다운 글들이었는데, 전공이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 멀리해왔지만,

축사나, 주례사 같은 것을 부탁 받을때, 짧고 전달력이 강한  글을 몇칠에 걸쳐 고쳐써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저는 적극 , 글을 써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겨우 완독했습니다.

 

유대인 실존주의 철학자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유태인 학살의 주범으로 악명이 높았던 아이히만의 재판의 과정을 참관한 후에

뉴요커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녀는 이 재판을,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보통의 인간이 어떻게 악의 카테고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 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인간 실존의 문제로 풀어 냈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저의 독후 감상이, 정말 솔직한 글이다, 였습니다.

인간의 심리와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이 분석한 프로이드를 오래 공부 했지만,

줄곧 정말 옳은 판단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습니다.

마치 시약이나 테스트 용지, 광학 기계로, 검증한 것 처럼, 정확해 보이기는 하나, '보고 싶은 결과' 를 도출 해내려는 시도로

그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하기가 주저 스럽습니다.

요새는 ' 내 마음을 몰라 준다' 고 말하는 이들에게, 아무도 사람 마음을  알 수 없다고 말해 줍니다.

저 자신 , 나를 알아 주기를 타인에게 기대 하는 일은 진작에 그만 두고 있습니다.

 

-- 역사적인, 방대한 양의 자료와 기록 들에 대한 기술도 상세하지만, 생략하고  독서중 밑줄 그어 놓은 귀절들을 복기 해 놓으려고 합니다.

 

# (그녀를 향한 비난 중에) 유태인에 대한 사랑을 결여하고 있다, 하자-한나 아렌트는 사랑이란 개인의 문제지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 모든 종교와 민족을 넘어서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인간됨(humanness) 가 존재한다.

 

#아이히만에 있어서 " 양심의 가책의 징후를 본적이 없으며,그에게 있어서 이상주의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 어떤 사람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

이를 들어 악이란 평범하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 악의 평범성 (banality)으로 설명합니다.

아무생각없이, 무사유적으로 받아 들임으로써 우리 모두 의 안에 있는 아이히만, 우리를 모두 평범하고 획일 적으로 일차원적, 전체주의적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악의 평범성은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의 사람들, 말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 말을 해봐야 쓸데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행동이며 말이 쓸모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해보아야 한다"

 

#아이히만이나 당시의 독일의 군인, 관료들에게는 " 일상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규칙이 있어

문제의 처리에 본질적인 다양한 협조 체제를 이루어 갈때 질서와 제정신을 유지해나가는데 엄청난 도움이 되는 일이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공허감을 느꼈을때 , 사실에 충실한 언어를 바랬어야 한다.

상투어나 관용어로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현실- 말- 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 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것이다

-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규칙들- 종북, 좌익, 애국,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배후세력,과 같은 언어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렌트가 이책을 서술하는 방식이 이야기 입니다.

이야기는 받아 들여지기 위한 첫단계입니다. 그 대상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사람이며 이들의 공통감(sensus communis) 입니다.

 

#내면적 이주( inner emigration) : 자기들은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해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

 

#특별한 사람을 구조하는데 노력함으로써 모든 특별하지 않은 케이스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임하는 규칙에 암묵적으로 인정하며 자신의 일에 대한 합법성을 확인한다.

 

#인간의 복수성( human plurality) , 다원성- 인간의 평등과 다원성의 문제: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면 계획하고 예견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르지 않다면 자신을 이해 시키기 위해 말이나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아이히만은 관청용어만이 나의 언어이다 라고 말합니다.  모두 공허 한 말로 다른 생각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언어는 타인의 현존을 막고 현실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 싸있다  그에게는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능력이 없다 .. 끔찍한 일이 어뚱하며 단적으로 우습기 까지 하다 자신의 범죄가 현실의 한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현실을 대면 할 능력이 없다. 그가 살았던 세상과 그는 한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독일 사회 자체가 동일한 자기 기만, 거짓말, 어리석음으로 사실성과 분리 되어 있었다자기기만의 실행은 너무나 일반적이었다 괴물은 아니었으나 광대라고 의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어떠한 양심의 문제 때문에 번민하지 않았다...모든 염려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전쟁의 주요목적의 하나일뿐 제 1순위로 실행하기를 요구하는것( 경제적 군사적 고려에 무관하게)

 

#유대인에게는 수백년간 그들은 자신의 역사 에 대해 그것이 옳든 그른 오랜 수난의 이야기로 이해하는데 익숙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살게 되리라는 승리의 신념이 오랫동안 존재 했다. ( 개인, 가족이 학살 당했다 해도 ) 민족은 살아 남았다 . 게다가 유대인들은 오랜 유럽 문명의 틀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결국 유럽 안에서 자신들이 존재 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버리지 못했다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진 수난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 선 것으로 위대한 저술가와 시인을 위한 문제이지 일개 법정에 속한 문제가 아니다

나치스의 파괴의 작동방식이 복잡한 괸료적 구성에 기인한 것으로 , 이해해야한다

 

#살상 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 수많은 범죄자 가운데 희생자들을 실제로 죽인 것에서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잇었던가 하는 것은 책임의 기준에 관련하여 아무 의미가 없다)

 

#법정은 그(아이히만)를 이해 하지 않았다.. 그는 유태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인류의 살인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죄는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되었다 그의 덕은 나치스에게서 요용이 되었다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오직 지도자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치스는 반유대주의가 모든 유럽을 통일하는 공통분모가 되리라고 확신 했다 진정으로.

그러나 나치스가 간과한, 야만 민족의 일부라 여겼던, 동부유럽과 스칸디 나비안의 저항

무엇이든 일반화 하기에 열심이었던 나치스는 유대인이 어디에서도 바람직 하지 않은 존재로 비 유대인은 현실이나 잠재적으로 반 유대주의 라 생각했다.

 

#유대인의 이웃들이 양심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쉬었다.

오직 무자비한 강인성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안전이라는 이해관계에서 해결 할 수 잇었다.

 

#인간의 연약함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하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Banility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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