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도처에 죽음에 대한 은유가 널려 있습니다.
심연, 미끄러짐, 추락, 어두움, 고요, 침묵, 정지, 또는 파괴, 공격, 멸망, 소멸 그리고 바다와 겨울...
인간은 노상 죽음의 근처를 맴돌며, 건드려 보고, 확인하며 도망쳐 안심하고 다시 다가갑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숨박꼭질 hide and seek 게임과도 같습니다.
프로이드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본능적 충동(death instinct, Thanatos) 을 생의 에너지와 counterpart인
정신 욕동의 중요한 기제로 설명합니다.
드디어, 그랑블루 를 봤습니다!
이렇게 표현 하는 이유는, 봐야겠다는 영화를 이렇게 오래 미룬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0년이나 .
뤽벡송 감독의, 헐리우드적이기는 하나 역시 프랑스 영화, 환타지가 아닌 드라마이면서도
일관성, 현실 논리 무시한, 감각과 정신적인 인상이 중요한 , 이완된 상태로 편안히 즐길 수 없는 때문?
자크와 엔조는 바다의 밑바닥, 더 이상 푸르름도 보이지 않는, 물을 느낄 수도 없는
검은, 삶, 하늘, 지상이 단지 기억일 뿐인 그곳, 에서 더 좋은 무엇인가를 발견 합니다.
자크는 그것을 보기 위해 다시 들어 갑니다.
Between what you know and what you wish,lies secret of big blue
그곳은 영원한 삶입니다. 무가 아니라 ,평화로운 안식처입니다. (자크에게는 돌고래가 그 표상입니다)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고 정복의 성취를 추구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나 곧 희열은 빛을 잃고
스스로를 의심하여, 다시 또 도전합니다.
그러나 자크는, 극복하고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
심장 박동을 조절하여 혈액의 순환을 늦추고, 순하게, 자연의 상태에 맡겨 동화가 됩니다.
죽음의 은유가 고요함, 평화로움, 순응, 자연스러운 동화, 영원한 것이 아닌,
폭력과 공포 ,공격, 파괴의 본능을 조장하는 문화 contents로 더 선호되는 추세이니
마음은 점점 더 거칠고 불안하며 대립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 영화임에 틀림 없습니다.
이미 멀리 가버린 사고의 방식으로 되돌이켜 감상하려니, 시간이 지나도 가볍지 않습니다.
가볍고 은근한 프랑스식 유머가 재미있고, 그러나 훨씬 발달해버린 영화 기술에 못 미치는 소박한 화면이,
기대했던 추억의 맛을 보다가 좀 실망하는 그런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