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aration (Making Amends) 1938-1940
"막 미국에 살기 시작 할 때 그린 그림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묘지에 꽃을 들고 갑니다. 이그림에 보상( 보상을 해주다) 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깊은 후회를 말하는 겁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가정교사가 아버지의 정부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녀가 10년이나 그들의 식구로 지냈다는 것에 엄청난 분노를 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가정교사 새디를 사랑 했었습니다. 그 보다도 더 깊이 병약한 어머니를 사랑 했기 때문에 이들을 용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는, 분명하고 정확한 것을 알고 싶어, 소르본느의 수학(기하학) 에 진학합니다만, 곧 아트로 전향합니다.
1938년 미국인 예술 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와터 (Robert Goldwater) 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 합니다.
그는 (어머니처럼) 현명하고 이성적이며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루이스의 전 작품은 자신의 과거를 재현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들을 다 끄집어 내고 수선하여 복원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루이스의 아버지는 테피스트리 엔티크를 수집하여, 어머니가 그것을 수선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하는 일종의 가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사진들은 , 일가 친척들이 다 모여, 파티를 하거나 정원에서 모여 같이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에 올라타 즐거워 하는 장면들입니다.
아들을 원했던 루이스의 아버지는 자신을 빼 닮은 루이스를 너무나 사랑 했습니다.
" 나는 프랑스에 돌아 갈 자격이 없다고 , 아직도 생각합니다. 나는 거기에 지금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데도 내가 그들을 버린 것 같습니다.
거기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버렸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영원히 사라지지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죄송스러움(Guilty) ,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Reparation) 남아 있습니다.."
만년에 루이스의 글입니다. 그녀가, 어린시절, 자신이 상처를 받은 것 이 아니라, 증오심과 분노로, 너무나 사랑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소녀들입니다.
.북구를 여행하고 오신분의 선물입니다
언젠가 허영만 님이 자신은 이현세 화백 만큼 여자를 예쁘게 못그린다..고 했답니다.
대가들 에 끼일 것 아니지만, 저도 참 예쁜 여자를 못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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