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베니스의 상인Merchant of Venice

torana3 2013. 2. 27. 10:59

남편은 역사 책 읽기를 좋아 합니다. 저는 최근에는 책을 사보는 일이 시들해져서- 핑계는 지금 가진 것만 해도, 죽을 때가지 읽고 남겠다-

지만 시력도 약해지고, 길게 생각하는 것도 좀 귀찮아 지는 ...입니다.

남편은 자기가 읽은 것 들을 간략하게 포인트를 잡아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르치는 일을 잘합니다)

그것으로, 제가 평소 별로 애써 찾지 않는 구체적, 사회 현상적, 과학적인 중요한 정보들을 , 게으르게 입수 합니다.

 

요새 남편이 읽고 있는 책이 두터운 유태인 이야기 입니다.

조상인 아브라함이 선사시대의 가장 영특한 고대인인 슈메르 족이 었다든가 (종교적 신비주의는 건너 뛰는 것 같고..)

누구나 공부를 해야하고 학자인 랍비와 지혜를 토론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독특한 교육법 ,

모든 중요한 산업에 금지 당하자 금융을 개발하여 그것이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만든 생존 능력 ,

전쟁이 일어나 증서가 분실 되어도 갚아야 하는 신용, 부를 지키기위해 가문의 비밀을 보장 할 수 있는 근친 결혼등 순혈 주의

결국 모든 역사의 경제를 쥐고 있었던 것은 이 민족이며 로마나 영국, 등 과거의 거대 제국들이 멸망할 때 는

그들에게 유대인이 배척 당하거나, 떠나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합니다.

 

 그렇게 영특한 민족이 역사에서 무력하게 당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제 기본적인 궁금증이 남아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클, 어려서 본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그 가족들, 그 기록들 어디에 봐도

나치에 대한 원망, 분노 투쟁의식이 없으며 현재의 삶에 대한 고난을 받아 들이고 의미를 찾고, 버티는 그런 순한 문장들입니다.

 프로이드의 아버지가 거리에서 유태인이라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피하는 장면이 프로이드의 어린시절, 유명한 트라우마의 하나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왜 그렇게 멸시 당하고 배척을 당하고, 기독교인들의 미움을 받았는지의 역사.

깊이 들어가 공부 하기는 끝이 없을 것 같으나,

 

영화 2004년 작  베니스의 상인에서 세익스피어의 사고를 빌어, 유태인을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시선을 참고합니다.

 

셔일록의 독백

나는 낚시의 미끼로 쓰기를 원하오 인간의 살이야 먹을 수 없지요 아무것에도 먹일 수 없지만 , 단 하나 나의 복수심에는 먹이가 되오

그는 나를 모욕하였오 엄청난 돈을 물리게 했고 나의 손해를 비웃었오 나의 수입을 우스워 했으며 내 민족을 조롱하였오

나의 거래를 무산시키고 내 친구들을 나에게서 등돌리게 하고 나의 적들을 부추겼으며 그런데 왜 그랬을 까요, 내가 유대인이라 그런거지요

유대인은 눈이 없나요? 손을 가지지 않았어요? 똑같은 신체 구조 사람의 모습, 감각, 감정, 정열을 가졌오.

같은 음식을 먹고 무기를 쓰면 다치고 병이 들면 똑같이 아프고 약을 쓰면 낫게 되지요, 여름은 덥고 겨울엔 춥지요, 당신들 기독교인 처럼.

찌르면 피가나고 간지럽히면 웃어요. 독을 먹이면 죽어요 우리를 그렇게 악하게 대하는 데, 복수 하면 안되나요?

우리를 무슨 일에나 싫어 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대할 수 밖에. 우리가 기독교인을 공격하면 당신들은 친절하고 신사적인 태도가 나올까요.

역시 복수 할걸요. 만약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기독교적인 벌이 무엇일까요. 같습니다. 역시 복수입니다.

내가 배운대로 하지 않는 다면 물론 당신들은 운이 좋은 것이겠지만.

 

포오셔의 대사를 통해 세익스피어는로 유태인에게 권고합니다.

(Portia: Act IV, Scene 1, Lines 183-204 )

자비란 강요 되어 질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대지를 적셔 땅 밑으로 스며들 듯,

자비를 베푸는 자에, 그리고 받는 자에게 . 자비는 이중의 축복입니다

최상의 미덕중의 최상이며 그의 왕관 보다도 더 빛나는 권좌이며

 왕의 홀(scepter)은 일시적인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일 뿐

그 복종과 경외심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왕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입니다.

그러나 자비는 그 홀이 휘두르는 힘을 초월하는

왕의 심장에 놓여 있는 권좌입니다. 자비가 정의에 베풀어 질 때

그것은 신에 돌려지는 것으로 이 지상의 모든 힘이 신의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여  당신의 탄원이 끝내 재판을 주장 한다면 

이 재판의 과정 중에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비를 기원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기도가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쳐 줍니다.

내가 말하고져 함은 당신의 탄원에 대한 재판을 중재하는 것이며

당신이 그대로 재판을 주장한다면 베니스의 엄격한 법정은  저 상인에게 선고를 내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 제 사견으로 , 유태인은  인간의 본능을 잘 파악하고  욕구와 생존을 위하여  연구하고 조직화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외에 닥쳐지는 고난은 신의 영역이며 순응합니다만. 그들이 만든 규칙과 법 , 행동양식은 불멸의 것으로

긴 세월 동안 견고하고도 분명한 것이어서 마치 인간 존재의 긴 생명력 처럼 가장 강력한 체계를 이루 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타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세가 아닌 내세 , 인류애와 같은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을 지도.

그것은 신약을 이루는 사랑과 헌신, 희생이라는 기독교인의 윤리에 반대 적인 것이고, 때문에 배척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고의 방향성의 차이이며, 이도 저도, 실은 다 존재 하는 현상으로 싸우고 우길 일은 아니라 보는데...

실은 제 선입견도 샤일록같은 인물을 현실에서 본다면, 비호감. 이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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