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아무래도 과거 인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같이 존재 해 있다 하더라도, 그 중요성을 인지 하는 것은 뒷 날입니다.
1972년 10월 17일 14살 여중 일학년
자유 방임적인 부모님 하에서 자라, 좀 되바라진 천방지축의 여자아이였던 저는
그 당시에는 꽤 중한 금지 규칙이었던, 영화 보기 (우리는 도둑 영화를 본다라고 했습니다) 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영화 이외에는 문화 생활이라는 것이 전무 했고, 어려서부터 장르 가리지 않고(성인영화도) 어른들 따라
영화보는 일이 보통이어서 그것이 전혀 '잘못된 일' 이라 생각지 않았는데,
그 날, 친구 들을 꾀어 늦은 시간에 극장에 갔습니다.
아랑드롱과 찰슨 브론슨이 주연한 허리우드 서부극 ' 레드 선' Red Sun
어두운 극장안에 들어가 (당시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었음) 자리를 잡는다는게, 한 남자 어른 옆.
잠시 화면이 밝아지면서 얼굴이 인식 되는 순간, 아, 선도주임 선생님. 악명높은. 화도 안내고 씩 웃는 표정이
거의 공포영화 스틸 수준.
다음날, -당시의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 , 돌파구를 찾을 수 없었던, 되돌릴 수 없는 후회의
시간들은 지금은 그 기억의 흔적 조차 남지 않았지만-
교무실의 한구석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고 이어야 하는 벌로 정학은 면했습니다.
좀 딱하다는 표정으로 보시던, 그나마 따뜻한 인격을 지니신 담임선생님의 선처 호소가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영화는 나중에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 했습니다만, 이전에 정신없어 영화의 내용이 전혀 들어 오지도 않았더라도,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듀 라미 이후에 두 배우의 콤비 영화가 여러편 되었는데 그 후로는 모두 관람 대상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참으로 야만적이고, 강압적이며 비교육적인 그러한 처사들은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하여, 삶의 제반 규칙 그 자체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까지도 영화는 학교에서 단체로 보는 것 외에는 금지라는 규칙이 여전 했지만,
저는 , 만석이 되어버리는 , 소란하고 관객이 많은 , 단체 영화를 피하여,
혼자 조용히 몰래, 미리 ' 도둑영화' 를 즐겨 보았습니다.
고민에 빠져 늦은 밤 귀가 하던 그 날, 유래없는 초헌법의 유신헌법이 공표 되었고,
일당독재, 수직적, 일사분란,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의 불허라는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채,
어린시절을 보내고, 수없이 많은 어이없는 사건들을 무력하게 무심하게 지나치면서 잊었었는데
내가 징벌을 받던 그날이 바로 역사의 그날이라는 것을.. 어제 문득 상기 했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러가자고 꾀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그보다 몇 년전에,
이 두 주인공이 같이 나온 , 아듀 라미. 멋진 남성들의 고독한 선택
- 실은 내용도 모르면서 - 열광하던 언니들처럼 그 영화를 이해하는 체, 사춘기 아이의 치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을입니다. 오늘 아침 또 끼가 발동하여, 먼 산길을 돌아 오는, 목적지 한 참 못 미쳐 종점인 버스를 타고,
내려 걸어 오면서 가을 산 정취를 느끼며 출근 했습니다. 제 가 좋아 하는 가을 그림입니다.
유럽의 어느 이름 없는 갤러리에서 가져온 팜플렛을 보고 묘사한 유화. 미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