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전주 교육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국어와 문학을 강의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학교가 끝나면 먼 흙먼지 길을 걸어, 다리를 지나서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는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전주사범으로 시작해 만들어진 교정은
울창한 히말라야 시다의 숲그늘과 목조식 회랑이 아름다웠습니다.
거기서 어머니의 수업이 끝날때까지 학생들의 시험지를 철 해 놓은 뒷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습니다.
어머니는 해마다 가을 축제때 시민회관에 올리실 학생 연극을 준비 하셨습니다.
연극의 연출은 그 이전 학교에서 부터 많이 하셨고, 제자들을 회상 할 때도
"그애, 오필리어가..." 라고 배역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밤 늦게 까지 강당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열띤 연극연습을 지켜봤습니다.
한번은 같이 극장에 갔었는데 -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고 기억 합니다.-
영화가 상영 되기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무대위로 올라가시더니- 그 당시 극장은 스크린 앞에 무대가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 보시며, 무대에 올릴 연극에서 배역이 걸어야할 걸음 수를 계산해 보셨습니다.
특히 몰리에르의 수전노와 ,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의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는 남다른 인생을 살아 오셨고 불행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일과 문학, 그리고 후반에는 종교에 열정을 쏟으시며 삶을 지탱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젊어서 쓰셨다는 시의 -전문은 모르겠고- 한 귀절이 기억납니다.
"....돌을 던지면 소리가 나고....내가 가는 길에는 달이 뜨게 하련다"
삶에 대한 순응과 자유의지를 함께 보여주십니다.
베르테르와 소월을 되뇌이셨고, 청화스님(姜淸華1923-2003)의 사진을 늘 머리맡에 놓아 두셨으며
아버지를 사랑 하셨던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