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센 버그의 방식으로 각종 쓰레기를 모아 만든, 나의 정체성에 관한 작품.
덧붙이자면 80년대를 청년으로 살아온 시대의 정신입니다.
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주제 중의 하나가 정체성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이전 전 후 세대의 실존적인 의미와는 좀 다릅니다.
신권神權에 의해 지배되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도도한 흐름이 이후 수백년을 지배했고,
낭만, 질풍노도, 세기말적 허무를 거치는 동안,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 엄청난 발전을 하게되는 산업의 힘으로
개인 보다는 집단의 힘, 기계 문명의 우의, 자본, 그리고 독재와 전쟁을 거치는 동안, 다시 인간 실존의 문제가 대두되고
나를 찾기.존재, 부조리, 표현, 해체, 와 같은 사유 방식이, 결국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는 , 역사성, 사회와 같은 맥락으로 부터 완전히결별하는 정체성 찾기가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놀란 감독의 메멘토 ' 해야 할 일' 은 알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끝없이 망각하는, 신체적 촉감의 기억 뿐, 정서, 이야기,
감정이 배제된 자기 찾기.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몸에 수없이 많은 각인, 사진 찍기, 이 조각난 기억 들을 이어맞추기를 하는 인간의 행동이 묘사 됩니다.
그리고 밀레니엄 이후 산업 혁명에 버금가는, 잡스가 만든 바탕에 져커버그의 새로운 사고체계, 컴퓨터와 IT, 네트워크에서
인간은 다시 세로운 정신의 세계를 구축 합니다.
정체성을 찾는 데 자기자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체의 큰 줄기 안에서 움직입니다.
내자신 소유의 뿌리가 있고, 내 이웃과 수평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종속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그 연결 안에서 간혹 큰 출렁임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rhizome)
그러나 이전의 방식으로의 개인적 정체성이 두드러져 보이고 싶다면, 그 욕망은 즉시 초라한 존재로 추락하며
그 줄기가 갑자기 뽑혀버릴 경우, 내 절규에 상관없이 이웃, 사회와 같은 운명에 쳐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뒤떨어진 시대정신의 소유자가 품는 의구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