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를 선정하는데 문학기행을 끼워 넣기가 몇 년째 루틴이 되었습니다.
지자체 마다 고장의 인물들을 기리는 문학관이나 기념관을 만들어 잘 보존 하고 있는데 ,
특히 미당/ 이효석/ 강진의 김영랑/ 보성 태백산맥관 /정지용/아리랑 관등이 오래 여운을 남겼습니다.
문학에 대한 관심 보다는 , 그가 살았던 고장의 풍광 안에서 사람의 일생을 조망 하는 유희의 일종입니다.
이번 휴가의 목적지는 ( 워낙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오로지 단종 유배지 청령포입니다.
역사를 그리 많이 알지 못하고 드라마도 어쩐지 사극은 선호 하지 않아
순전히 동반자인 남편의 픽입니다만, 소년왕의 애처로움이 오롯하게 느끼게 된 여정이었습니다.
정신의학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공감( empathy) 입니다.
수십년 정신과 의사이었으나 그 마음에 완벽히 도달 했던 적은 .. 솔직히 없었습니다.
결국 최근에는 '나는 당신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 할 수는 없다" 는 말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Sympathy 는 무엇인가. 동정 ,연민,동조.. 우리말로는 구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empathy 와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empathy를 알려면 어느정도는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이성적인 중도(neutral) 의 위치에서
나를 사라지게 하고 상대의 입장에 전적으로 몰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치료나 분석의 수련 과정에서 supervision을 받는 중에 이 선을 지키지 못했다하여 매번 , 소위, 깨지고는 했습니다만
아무튼 저로서는 치료과정이나 인간 관계에서 고민하고 연민하며, 두려움, 애처러움, 안타까움 등의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건 열등한 감정일까?
청령포 . 바닥이 거의 들어난 작은 개천같은 강물을 통통배로 건넙니다.
소문대로 소나무들은 죄다 엎드려 조아리듯이 소년왕의 처소를 향해 구부러져 있습니다.
새삼, 그를 애달아 하는 사람들, 죽음을 불사하고 부귀영화를 내 던진 신하들,
고은님 여의 옵고.. 물가에 망연히 앉아 있던 호송 관리,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리워 하는 마을 사람들 ...
소년이 자주 걸터 앉아 있던 두 가지로 뻗은 수백년된 금강송,
그의 시신을 건져 올렸다는 강이 내려다 보이는 , 험준하게 둘러싼 산 들 너머 먼 하늘 아래 떠나온 궁으로 향하는
언덕위 조망대 .
신기하게도 수백년 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슬픔이 차오르며 가슴이 저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고장에서 지원하고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의 예상치 못하게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남쪽 끝으로 내려와 또 다른 비극적 운명의 소년 을 만납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졌으나 자신의 오만함에 상처를 입고 평생을 떠돌고 사는 김삿갓입니다.
하나는 원치 않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 났고 , 또 하나는 이루지 못할 야망을 가졌으나
운명으로 부터 내쳐진 두 소년 , 하나는 유폐 되고 하나는 정처없이 떠도는 처지에 였었다는 것도
대조적입니다.
청령포 . 왕방연의 시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내마음 둘듸 업셔 냇가에 안쟈시니/뎌 물도 내 안 갓하야 울어 밤길 예놋다.
진달래장이라는 이름은 본래 여관이었다가 장례 용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갤러리로 만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