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을 백중까지 일곱권쯤 사경 하겠다고 서원 했는데 요즈 제가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한계 라고 느낍니다.
젊은이들 처럼 온 몸이 부서져라 노력 해서 뭔가 이루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공부를 꽤한 아들이 말하기를 금강경은 상을 없애는 경이고 지장경은 상을 만드는 경이다. 라 합니다
아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구나..
어제는 금강경 작은 소 책자를 가지고 한 페이지 사경해 보았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에게 안심安心을 되먹임 하는 가벼운 행위입니다.
저는 공부가 매우 짧아 평할 입장이 못되고 불교서적을 봐도 단지 해석이 아니라 느낌으로,
그런데 스므살 무렵에 해인사에서 일타스님으로 부터 계를 받고 얻은 제 법명이 慈悲行입니다.
너무나도 가볍게, 마치 컨베이어벨트에 주루륵 나오는 공산품에 던져준 이름 처럼 순서대로 받았지만,
그 수계장을 아버지는 액자에 넣어서 방문 위 벽에 걸어 두셨습니다.
성철스님을 친견 할 수 있는 삼천배는 포기하고 ( 나중에 스님이 되신 공대형이 미친듯이 절을 해대는 후배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고요하게 천천히 배拜를 올리는 모습에 반해서?) 1080배를 마쳤는데
그러고 한동안 무릎이 아파, 아버지는 시내에 작은 아버지 친구분이 하는 정형외과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갈 때 마다, 막내딸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의사한테 고했습니다.
자비행이 말하자면 관세음 보살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두 부처님이 자신을 나투신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내용은 다 대동소이 합니다. 부르기만 하면 생각만 하면 다 들어 주신다,
온갖 복을 다 주시고 모든 재앙을 물리치신다
젊어 한때는 나의 논리적이지 못한 불합리로 인하여 그 정성이 부족하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 하지 못하고 흔들려서
나 자신이나 나의 가족에 액난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비이성을 매달리기도 했지만,
그러나 깨달음이란 그렇게 용맹정진 만으로는 아니겠지요.
고행하시던 부처님이 모든 것을 놔 버리는 그 시간에 얻은 마음의 평화.
그래도 부처님 마다 역활 분담은 있는 듯 합니다.
지장부처님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업으로 받는 벌을 공유 해주는/
아미타불은 근기가 부족한 이들을 손을 잡아 끌어주는 타력 부처님/
관세음 보살은,, 슬픈 울음을 들어 주는/
`배고픈 아기가 어머니를 찾듯이- 갈증으로 신음하는 사람이 물을 찾듯이 - 중병을 앓는이가 용한 의사를 찾듯이 '
매달릴 수 있는 부처님이랍니다.
관세음 보살은 자비의 부처님이랍니다. 이름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요-- 어림 없습니다.
부처님이나 지장보살이나 아미타 보살이나 관세음 보살 께 매달린 중생 일 뿐입니다... 하
아 어머니,, 아미타보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