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스크랩북 2-면학도 勉學圖

torana3 2019. 11. 8. 08:44

입동입니다.

벼가 잘린 밑둥만 남은 빈 들에 곧 서리가 올 듯 합니다.

밤새우는 낚시군들,  이슬 젖은 거미의 레이스 뜨기...


     


두번째, 아버지의 글을 필사 합니다.


"공설 운동장에서는 그저께부터 운동경기가 계속 되고 오후에는 영화 관람이 있대서 그런지 아침 부터 뒤숭숭 하고 수업시간이 째이지 않아 학교 전체가 영화나 축구를 하는 것 처럼 떠들썩하다.

그래 어느 학생을 부뜰고 떠보았다.

" 너 무엇 하러 학교에 왔느냐?"

"공부 하러 왔지요..."

"공부하러? 그런데 한 시간이라도 덜하기를 바라니, 공부 하러 왔다는 건 만반 거짓말이고 책보 들고 공부 안하러 온 게 아닌가? 내가 지금 몸살이라도 나서 한 시간이라도 수업 시간이 줄어 들면 너희는 그보다 즐거운 건 없을거야!"

되처 물으니까 꽁무니를 뺄 뿐이다.

이렇게 꼬집어 보는 것이, 오락이나 시함 구경 따위는 아예 비위에 맞지 않고 학업에 전력을 다해야 겠으며 수업이 무엇보다도 재미난다는 대답을 기대해서는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런 대답이란 육십고개를 넘은 늙은이 냄새가 나겠으니 말이 안된다.

 배움의 길이 만만해서 장기나 바둑 두듯 밤을 새워가며  즐길 수 있으며, 무슨 구경을 하듯이 신이 난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 어데 있겠는가?

 저 지게군도 훌륭한 유식한 이들이 되었을 게다.

그래 옛날 서당에서는 매를 때려야 했으나, 학교가 된 후로는 시험 제도로 변하고, 시험이란게 지긋지긋하니 까 고사로 고치더니 오늘 날은 주입식 수업이 아니라 계발식 학습 지도라 하며 눈쌀을 찌푸리지 않고 흥미진진한 분위기 에서 공부를 해보자는 셈인데 따지고 보면 오십보 백보이다.


명랑 활발은 청춘의 보배인지라 케케묶은 대원군 집정을 끄집어 내느니보다 뽈을 하늘 높이 차고 싶을게다.

학문의 필요성은 너무나 잘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놀고만 싶으니 탈이다. 이래 공부를 할까 말까를 수없이 계속하는 겨를에 어언간 세월은 흘러 값없는 졸업장을 들고 서글피 교문을 나서는 구나


하긴 공부를 안하여도 위대해주는 격언과 전기가 수두룩히 기다리고 있기는 하다. 에디슨이 학교를 쫒겨나고 뉴튼이 낙제를 하고 비스마크가 아이들과 싸움만 하였으니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냐,

이뿐인가. 당장 학창시대에 놀기만 하던 친구가 출세 했단 말도 곧잘 듣고 또 눈 앞에 보고 있지 않은가?


이 뿐인가. 당장 학창시대에 놀기만 하던 친구가 출세 했단 말도  곧잘 듣고 또 눈 앞에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퇴학을 당하고 낙제를 하고 싸움을 해야만 우대한 과학자나 정치가가 된다는 역설은 진리가 아니다.

이 역설을 믿다가는 링컨이 삽에다 숯으로 글을 써서 필경 명성을 떨쳤으니 신문지로 필기장을 삶아 궁색스럽게 공부를 하면 대통령을 바라기는 어려울 지라도 주지사는 문제 없다는 우수꽝 스러운 논리가 설게다.

무슨일이든 예외가 있지만 이같은 전기는 전설에 가깝고 기상천외의 사건을 침소봉대격으로 나열하여 위인의 거룩함을 선전하자는 심산에서 울어난 소치일게다.

있다면  기상천외의 노력과 고심 뿐이었다는 것을 명심할 지어다.

그렇지만 대기만성이란 말이 엄연히 있지 않느냐!

 대기만성이 몇사람을 올바로 지도 했는지 모르되 이것을 믿다가 小器도 못되고 죽은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도대체 격언이라는 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장소에서 자극을 주기는 커녕 자위의 완융玩用물이나 진정제로써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꼭 말하겠다고 결심한 요건을 말 한마디 제의 해보지 못한 채 어느 회를 마친 후 밤 잠을 이루지 못하여 뇌작 거리는 판에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하는 격언이 측은히 달랜다.

거기다가 참음의 미덕을 찬양한 금언들이 위무해 줄지니 안심하고 잘 수 있다는 말이다.다만 자기의 못남을 자인않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세상이 거칠고 까다롭고 엄부정해서 남자일언중천금이란 옛날 고담에서나 찾아 볼일이고 유희나 작난삼아 저지른 것은 아니런만 오늘날 혈서나 입묵入墨까지 한 맹세라도 장담을 못하게끔 되었다.

사람과의 세약이 이렇거늘 환경의 유혹과 더불어 상대가 없는 자신에게 대한 내약은 더구나 어그러지고도 남으리라.

애당초부터 예상 했지만 계획대로 이행 안할 일과표를 작성한 데가지는 기특한 일인데 나중에는 이것조차 싫증이나서 슬슬 빠져가며 "성공한 표본...구타여 모범이라 하지 않고 표본이라 한다...들은 숭배 할 정도로 나태해 진데서야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슬픈일이다.


미구라지 처럼 맨들맨들 피하여 가며 세파를교묘히 편승할진대 군중은 그 기술에 찬사를 보내기는 하리라.그러나 그대는 어디까지나 용이 아니라 미구라지겠고 찬사인들 곡마단의 연예사에 보내는 박수와 비슷한게다.

죽일 듯이 미워 할 줄 아는 사람 만이 진실로 사랑 할 줄 안다. 삶을 즐기려 하는 사람은 죽음으로서라도 삶을 장식하려든다. 노력하는 사람이 정말로 놀 줄 안다.

괴상한 역설이나 편승철학을 물리치고 배움에 전력을 다해보라.


그리고 종이 나거든 창가로 가라

녹음이 스쳐 불어오는 훈풍이며 멀리 바라보이는 누렇게 익은 보리, 밭이랑 정거장에서 울려오는 기적소리, 충혼비와 강당 지붕위로 오락가락하는 참새들이 모두 다 네것일지니 얼마나 상쾌한 휴식이냐? 한시간의 힘을 오로지함은 십분간의 즐거움을 주고 오늘의 충실한 과업은 오후의 영화관람을 유쾌하게 할 것이다.


한시간이 이렇고 하루가 저럴지니 일생을 두고 남다른 근면을  끈기 있게 계속 한다면 참다운 행복을 줄게다.

이것이 바로 에디슨이며 비스마르크가 되는 기본 요소이니 자 이제부터 배움의 길을 힘차게 걸어보자. "


 1953년 북중( 전주 북중학교) 교지


34세 때 평교사 시절 일듯 합니다.

학문에 대한 패기와 열정이 느껴집니다만, 구태의연한 고답적인 사고를 벗어 나있습니다.

지난번 인색론의 글에서도 마찬가지 이지만, 아버지는 유교적 윤리를 벗어난 서구의 실용주의, 합리적 사고 방식을 더 좋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80 정도나 되었을 그 어렸던 제자의 철없는 행동 조차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 보았을, 젊디 젊은 교사인 아버지를

내가 또 바라보고 있습니다.


* 처음 보는 옛날 단어들이 있어 볼드체로 바꿔 보았습니다. 한문은 생략합니다. 후에 정식으로 인쇄물을 만들게 되면 수정해서 넣을 생각입니다.








                                    두 놈 만 남기고 다 입양 보냈답니다. 백구는 활달해서 병원 건물 안 까지 따라 들어 옵니다. 누렁이는 좀 소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