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수필을 오려서 스크랩북에 정리 해 두셨습니다.
저는 , 책을 보는 것 처럼 늘 들여다 보았습니다.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즐겼던 것 같습니다.
인색송 吝嗇頌
난 음악을 모른다. 이만 저만한 음치가 아니다. 그래도 사회 생활을 하자니 연회 끝에 여흥이라는게 있게 되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
암만 고역일지라도 나의 존재를 무시해주지 않으니 탈이다. 보통학교 시절에 뒷 등에 책보를 메고 곧잘 즐겨 부르던 노래 " 여보 여보 거북님"으로 곤경을 벗어 나고 싶으나 그것 조차 괴상한 변조다.
그러나 자신 있는게 하나 있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다 " 일락 서산에 해는 뚝 떨어지고일출 동령에 달이 솟는다."를 제딴으ㅗ그럴듯이 넘겨보는 것이다.
음치라면서 어떻게 그럴듯이 부를 수 있느냐 난 창극조를 더러 들어 보았지만 음치라 그런지 고저 장단이 부르는 사람 마다 가지 각색으로 들린다. 그러니까 내가 부르기만 하면 그 어느 사람의 그것과 비슷 할 게 아닌가?
돈에 인색한 사람을 수전노라고 한다. 와석 신음 하며 사경을 헤메고 있을지라도 돈만 받아 내면 그만인 부류다. 돈을 받기도 전에 죽었으면 그 수의라도 벗기어 다소라도 손해를 보충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다. 굶어서 죽은 걸인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더니 석 달 먹을 생활비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중국 민족을 풍자한 걸게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의 백성이니 이렇게 악착스럽지는 못하다.순박하고 관대하다.양식탁처럼 접시마다 자기 목시대로 벌려 놓지 안해도 무방하다. 사람 여덟에 갈비 열대 닭을 삶은 냄비를 상 한 복판에 놓아도 좋다. 설사 입 맛을 못다신 요리가 있어도 오손도손 머리를 맞대어 먹고 태연 작약 군자의 위신을 갖추어야한다. 더구나 싹싹 긁어 없애는 건 남자의 체면 문제다.
우리의 노래가 저렇고 우리의 식탁이 이러니 ``임어당의 낭만적 철학을 빌린다면 찬양하여 마지 않을 일이다. 양쪽에서 파나가는 "턴넬"이 위 아래로 뚫여도 수수자약하는 국민은 일분 일초를 다투어 숨막히는 생활하는 미국 국민과는 비할 바 아니라고 여유있는 생활 태도를 극구 찬양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고 끊고 버리기 아끼는 구미의 문화가 우리보다 앞서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8.15 광복을 맞이 한 후 외국 손님들이 이나라 고유 민족 문화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나처럼 부르는 창극조를 그네들 앞에서 내 놓지 못하게끔 되었다. 이제 늦 부지런이 나가지고 대학에 국악과를 둔다, 국악 강습회를 연다, 국악예술고등학교를 둔다 야단법석을 이루었고 음치를 저들의 양악처럼 따지게 되어 나따위는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할 형편이다. 나야 어떻게 되든 우리 민족 문화 발전을 위하여 쾌재를 불러두자.
축구 선수는" 볼 패스"를 하는데 인색하다. 시인은 낱말 하나하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독일의 어느 수학자는 둘에 둘을 더하면 어째서 넷이 되느냐에 대하여 백여 페이지의 논문을 썼다한다. 돈에 인색한 영국 국민은 샤일록( 베니스의 상인) 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 군림 할 수 있는 영토를 마련 할 수도 있다
인색한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바로 예술 삼매경과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전노가 암만 세상의 배척을 받을 받을 지라도 한푼 두푼 모은 돈뭉치를 문을 딱딱 걸어 잠그고 희미한 등불 아래 물그럼히 애인처럼 바라보는 맛이란 화가가 자기 수작품을 감상하는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문화는 인색의 소산이다. 모든 자원을 아끼는 국민에게만 찬란한 문화를 향수 할 수 있는 것이다. 회의에 정각보다 한시간이나, 두시간쯤 늦는것을 다반지사로 여기는 국민이나 게시판에 글이 아무렇게나 씌어있어도 무감각한 국민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수투룸한 우리민족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이중과세를 하지 말자고 외친다. 그러나 공문이건 기사를 쓴 사람이건 그걸 선전 계몽하는 사람이건 양력과세를 안 할 생각을 굳게 다짐하고 외치기만 하는 것이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이런식으로 왔기 때문에 4.19나 5.16 혁명이 있고 만 것이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이 민주적이라면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인색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수전노와 돈, 예술가와 작품, 학자와 주장, 정치가와 국민, 모두 다 전자가 후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데서만이 얻어지는 게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히 마음 씀에서 주어지는 게다. 학문에 예술에 체육에 인색하여보자. 그리고 젊음을 한없이 아끼자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서는 못 노나니...
젊어서 늙고 늙어서 일하자니 이런 젊음을 막 팔자는 민요는 옛날 선조들의 장식물로나 간직해두자
- 1962년 전주고등학교 교지
시대를 뛰어 넘는 선구적인 가치관으로 영향을 받은 아버지의 제자들은, 사회에서 대단한 역활들을 했다고 듣고 보았습니다.
그 시대에 셔일록의 인색을 긍정적으로 본다니, 굉장 합니다!
* 글에는 한자가 많습니다. 그냥 한글로 표기 했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북3-레디. 퍼스트 (0) | 2019.12.06 |
---|---|
스크랩북 2-면학도 勉學圖 (0) | 2019.11.08 |
웬델 베리와 김은성 1. 착취적 사회와 양육적 사회 (0) | 2019.10.22 |
페터 한트게 - 아이가 아이 였을 때 (0) | 2019.10.11 |
어린왕자의 기적 (0) | 2019.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