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t

남전참묘 南泉斬猫

torana3 2019. 11. 5. 10:58

11월입니다.

찬 기운이 내려 앉습니다. 대기는 금방이라도 작은 결절을 이룰 듯 , 명징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엊 저녁에  읽은 책 중에 남전참묘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아침, 들길을 걸어 오면서,

근래에 있었던 혼란 스러운 사건들, 선택의 문제와 더물어 소피의 선택의 장면들이 오버랩 됩니다. 


인간은 때때로 선택을 강요당합니다.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소피가 깊은 멜랑콜리아로 빠져 들게 된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입니다.

왜 독일 장교는 소피에게 선택을 강요했을까,

소피는 수용소로 줄지어 끌려가는 유대인의 무리에서  ,  딸을 안고 아들을 걸리면서

자신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충실히 예배를 보았고, 독일인과 똑 같은 삶을 살았다고..애원을 합니다.

저는  영화에서의 그 독일 장교가 연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종 학살을 수행 해야하는 자신의 위치에 분노를 억누르는 듯 무감각한 모습이었으며  

그 때 소피가 들먹이는 기독교의 신에 대해 빈정 거리 듯,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도량에서 수행을 하는 승려들이 고양이를 두고 갈등을 일으킵니다.

남전선사는 그 갈등의 싹을 없애 버립니다.

조주는 아무 말 없이 짚신을 머리에 이고 돌아서 가버립니다.


독일 장교는 , 잔혹하고 야만적인 학살을 보면서 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남전 선사는 수행을 방해하는 원인을 단칼에 제거 해버립니다.



인간이 판단하고 행 할 수 있는 것은 그 한계가 어디인가.

순간과 영속의 차이일거라고, 유한과 무한에서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 뿐일거라고...

그저 시린 계절에 머리를 식힐 따름입니다...


겨울 철새들이 열지어 나르다가 흩어 지다가 마치 군무를 하듯 다시 대열을 만듭니다.

끼룩기룩 우는 소리가 대화인지, 그저 맑은 천공을 자유로이 나르는 희열의 감탄사인지...

알길이 없습니다.



복순이의 아이들이 벌서 이렇게 자랐습니다. 양육이란 사랑과 먹이만 주고  다치지 않게 보호만 해주는 것으로, 그 이상은 스스로 자라나기를 바라만 본다는 것.

을 진작 알았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억지로 만드느라고 가해진 상처들이 참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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