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t

우중 백중 雨中 伯仲

torana3 2019. 8. 16. 09:18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저녁에 일찍 집을 나섭니다.

 한강변을  달리는 차안에서, 비온 뒤 창 밖 풍경은 너무나 맑고도, 밝아 , 비현실 처럼 보입니다.

시야는 한없이 열려  세상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집니다.

비를 뿌려 듬성듬성 덜어낸 구름은 황금 빛 햇살로 테를 두르고

강물의 수면에 작은 물결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좀 나아진 듯 합니다.

젊은 시절 만큼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요동을 치지는 않습니다. 

웬만한 분노에는 금새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게 되어 희석 되어 버리고 맙니다 . 

여전히 슬픔으로 마음이 아리고, 세상이 만든 아름다운 경치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만,

흥분을 연소시킬 비축된  에너지의 총량이 형편없습니다. 다행일지요.



어제는 우란 분절이라  절에 들렀습니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해서 웬만한 행사는 생략 되는 모양입니다.


참배를 마치고, 한번씩 써두었던 사경 필사 종이를 제단 앞에 올려 놓고는

절에서 무료로 주는 떡이나 하나 받아 가려고 줄을 서다가 , 차례가 언제 올른지 몰라  포기하고 법당 아래 돌계단에 앉아

잠시,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합니다.

아마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신도인지, , 떡이 많다고, 다시 줄을 서라고 안타까워 하며 재촉합니다.

여인들에게는 본래 식량을 채집하는 일에 집착하는  DNA가 있는 모양입니다.  

떡 한덩어리 꼭 받아야 할 정도로 궁하지도 않으면서, 또는 절 떡을 먹어주어야 한다는 일종의 기복도 있는듯,

새치기 하는 할머니 들의 염치로 긴 줄이 줄어 들줄을 모릅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짜증이 그나마 작은 공덕이라도 망칠 까봐, 훌훌 털고 절을 빠져 나옵니다.


화가 나면 그대로 보고 있으면 된다. 둑을 넘어 서 버리기 전에, 아 내가 화가 났구나...

관조觀照  하면... 스르르 사라진다.

( 스물도 안되었던 제가, 돌아가신 오빠가 하시던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만사에 관대 했던 오빠는  젊은 나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예민한 자신을 다스리고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정서 중에는 슬픔이 제일입니다.

슬픔으로 그리움으로 곁에 없는  먼저 가신 영혼들을 천도 하고는,

비온 뒤의 맑은  날처럼, 백중의 다음 날처럼.  가벼워 지면,  다른 날 들을 또 견디며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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