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 샤론스톤이 주연한 원초적 본능 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 대단한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아직 독재의 그늘을 벗어 나지 못한 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논의는 억압 내지는 피하던 터라,
영화나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대중의 관심을 주도하던(또는 의도적 정책) 시절입니다.
당시 마광수 교수는 , 이 영화의 사전 검열로, 성적인 묘사는 대부분 잘라내고 ,
잔인하고 폭력적인 부분은 살려두었다고 격하게 비난 했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이나, 행동은 못하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고루한 편이라.
남들처럼 마광수 교수의 일탈적? 행위를 동조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우리사회가 성문화에 대해,지나치게 금기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름붙이기를 좋아하는 프로이드 박사는 ,
구강기를 두 시기로 나누어 전반의 입으로 먹고 빠는 의존적, 쾌락의 시기와
훗날 이유에 대한 불안으로 부터 오는 깨무는 공격의 시기로 분리 했습니다.
즉 구강기에 고정된 인격은, 말하고 먹고 마시는 것 말하는 것 에 탐닉하는 것과 더불어, 공격적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Caretaker 에 대한 어머니에게 의존하면서도 이유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또는 원초적인 쾌락과 공격심이 유아기에 표현 되는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마광수 교수는 그에대한 정신분석적 논의, 생물학적 인자에 대한
우리 새내기 정신과 의사들이 흥미를 갖게 하던
인간본성에 대해 반짝이는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선 선구적 인물이었습니다.
점잖은 신사들의 숨은 공격심이 , 그의 나약해 보이는 성담론을 지긋이 눌러버린 시대의 모습입니다.
요즈음은 사실 공격심이나 성적 표현이나, 너무나 노골적이여서 저같은 구시대적 인간은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너무 엄하지는 않은 수퍼에고 Superego가 필요한듯 합니다.
경주의 한 고택 대청마루입니다. 정갈하게 정돈된 집기와 기하학적 무늬의 건축물들이
공격심이 아닌. 마음을 잘 가두고 안정시키는 역활을 합니다.
모든 것이 분출된다해도 본능적 욕구가 해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에너지의 사용으로
정신에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습니다.
'Psychiatr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움 받을 용기에 대하여 (0) | 2017.09.27 |
---|---|
친구 (0) | 2017.09.20 |
진료실 단상 (0) | 2017.08.30 |
니지- 영혼을 깨우는... ( Nise, The Heart Of Madness) (0) | 2017.08.23 |
이드 Id (0) | 2017.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