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그림을 잘 그리기, 보다는 자기 마음 대로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찾아 옵니다.
저의 경우도 그림 그리기가 ,
어린시절,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상像들을,말이나 글보다도 꺼내 보기가 쉬었습니다.
종일, 곱돌, 깨진 장독이나 사금파리, 몽당연필, 부러진 크레용으로 벽이나, 울타리, 땅바닥에 시도 때도 없이 끄적거렸습니다.
아마 초등 학교 까지는 그런 그림들로, 사람들의 감탄도 듣고 상도 더러 받았기 때문에,
순수한 그림그리기 보다는 칭찬때문에 기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들어서 부터는 ,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특기 교육을 받던 미술반 선배들의 ' 잘 그린 그림'
에 비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형태 그리기, 원근 법 표현이 어려웠습니다.
- 잘 그리려면 음영이나 크기를 강조하고 때로는 과장도 해야만 그림이 '산다' 고들 했습니다.
제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그 틀 안에서 그림 그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크리스 마스 카드 만들기가 있었습니다.
문구점에서 파는 반 쯤 완성된 밑그림에 색만 칠하면 되는 그런 재미없는 작업을,
그 선 무시하고, 재료 무시 하고, 내식으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미술의 제도적 교육을 의식 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 그리기는 즐겁기는 하지만 ' 작품' 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포기하던 중,
마흔이 다된 나이에 제인 그로스를 만났고, 그 후에 숲 화실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나의 그림그리기 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깨는 일이 오래 걸렸습니다.
음악 들으면서 선 긋기, 이야기 하기, 눈감고 그리기,찢고 부수고 엎지르기,
공원이나 골목길 산책하면서 재료 주어오기, 그림은 안그리고 책보고 영화 보기, 놀기...
숲 주인은 때때로 나의 영감에, 또는 방식에 비슷한 유형의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찾아 보여 줍니다.
몇 년을 숲에 드나 들어도, 각자의 개성만 있을 뿐 똑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경쟁도, 비교도, 움추림도, 우쭐함도 없습니다.
그대신, 남들 보기에 잘 그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을 놓지 못한다면, 실망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모든 행동에 의도는 없습니다. 삶의 새로운 형태를 배우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바 소녀가 사온 대형 피자의 박스에, 냅킨, 잉크, 색 색의 가는 철사와 콘테, 파스텔, 먹.
영화 컨택트의 언어,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던 저녁 만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