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대학에 그것도 제 성적으로는 좀 어려웠을 , 의대에, 운이 좋았다 할 지 떠밀리다 싶이 입학하고나서, 참 쓸쓸하고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이라는 낯 선 도시 아무튼 , 어디서든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봄, 화려한 캠퍼스의 들뜬 분위기가 어색해서 , 수업이 끝나면 , 서둘러 빠져 나와,
그렇다고 하숙집 구석 골방으로 대낮 부터 들어가는 것도 할 수 없어, 헤메다가 찾아 가는 곳이 소극장 객석입니다.
어머니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어머니는 문학과 연극을 좋아 하셨습니다. 세익스피어 부터 사무엘 베케트 까지 여름 부터 작품을 구상해서
서너달 매일 밤 늦도록 연습을 해서 가을에 시내의 극장 무대에 올리고는 했는데, 의상과 무대설치 까지 직접 지휘셨습니다.
대본의 여백에 색연필로 가득 적은 연출 노트를 만드시고 독백 처럼 어린 저를 옆에 두고 아이디어를 말씀하시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말, 유신의 막바지라 거듭되는 긴급조치로 독재는 견고해져 영구할 것 같은 그 시대.
젊은이들은 가벼운 청년 문화와 부조리 연극에 심취해 있는 듯 보였습니다.
아일랜드, 에쿠우스, 신의 아그네스와 빨간 피터의 고백은 해를 넘겨가며 장기 공연을 이어 갔습니다.
그 당시에, 연극무대에 올라서서 밝은 무대를 거쳐 다른 쪽 휘장 안으로 퇴장 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신의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부조리 극들입니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와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친절하지 않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보다가 욕을 먹고 물까지 뿌려대서 관객들을 내쫒아버리는 그런 연극들을
보면서 불쾌하기 보다는 존재의 불확실함, 고독함, 아이러니, 자학의 쾌감과 같은 인간 정신의 일면을 인식합니다.
그해, 1980년 늦여름. 오랜 휴교로 부터 수업이 시작 된다는 통고를 받고 상경했을 때 하숙에 짐을 풀지도 않고
찾아 간 곳이 공간 소극장 이었습니다. 1980년 오월 이라는 제목의 오태석 극입니다
( 그 이름을 생각해 내느라 아침 내내 머리가 아픕니다. 마치 추억을 물건을 찾아 낸 것 같은 희열이..)
정치 상황에 대한 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남자애 같은 소녀티가 겨우 벗은 바텐더가 두 남자를 상대로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게 다입니다.
망각의 강물이 자꾸 불어 납니다. 건너편,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렵습니다.
구글 서취하면서 기억을 다시 더듬어 가게 된 이유는 아루숲의 어린 예술가들이,
이제는 억압 할 것 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아, 쉬운 말만 좋아 하는 줄 알았던 그 스무살 짜리 아이들이,
울창한 정신의 원시림을 헤집고 다니는 깊은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스무살 무렵과 여전히 같습니다.
작품의 저작권은 아루숲의 영 아티스트 들에게 있습니다. http://www.artsoo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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