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Sam Steinberg)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 매력적이고 기쁨을 주는 캠퍼스 잡상인이었습니다.
" 그림 있어요, 쵸코랫있어요!" 라 소리지르며 학생들에게 인사 합니다.
1930년 부터 그가 사망한 1982년 까지 이 대학의 학생회관 밖이나 법대건물 계단 아래에서 그에게서 캔디바 candy bar 한번 사지 않고 지나치는 학생은 거의 없었을겁니다.
또한 그들은 또한 샘의 마커로 그린, 독특한 스타일의 유명인의 초상화그림, 초현실주의적인 동물그림, 대학의 로고들을 통해서
샘의 예술세계를 보면서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뉴욕은 화려하고 유서깊은 갤러리와 뮤지움들을 가진 위대한 예술의 선두적인 도시입니다만 , 샘의 걸작은 그곳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거리에 , 또는 쓰레기 더미에 놓여 있으며 학생 구매자들은 별 망설임 없이 그의 작품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는 부르클린에서 자라나 브롱스에 거주하는 , 별난, 이상한 , 대학의 풍경에 묻어 사는 , 신문파는 소년의 모자를 쓰고 억센 부르쿨린 억양으로 떠드는 사람입니다.
졸업생들은 샘을 캠퍼스에 놔두고 떠납니다, 경력을 따라, 가족을 따라 옮기게 될 때마다, 샘의 그림도 놔두고 떠납니다.
모두들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1975년에 대학에 입학한 랜디 니콜은 40주년 동창회를 열면서 샘의 작품을 모아 전시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150명정도가 참여해서 잘 된 작품 90개를 전시했습니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상자나 종이봉투에 포장하여 다시 가져가도록 대학 본부에 맡겼는데,
청소부들은 미쳐 찾아가지 못한 작품들 60-여점 가량을 쓰레기로 오인하여 버렸습니다. .
' 매일 아침 그는 지하철을 타고 와서 종일 즉흥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그는 원기왕성하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사람을 보면서 힘을 냈습니다"
작품을 잃어버린 그림 소유자가 안타까워 하며 말합니다.
이런 슬픈일들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가 그림을 팔기 시작한것은 1960 초기 부터입니다. 처움에는 1달러, 나중에는 5-10달러 정도로 팔렸는데
그의 작품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쓰레기버리는 날, 쓰레기 통안에서 였답니다.
1970년대에 그의 작품이 잠시 빛을 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이 샘의 작품을, 아웃사이더 아트low art의 대가인 프랑스의 장 뒤페에게 주었는데
그는 이 작품이 매우 흥미롭고 기쁨을 준다고 칭송하였고 그를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승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샘은 아티스트가 아닌 컬럼비아 대학의 기인character이었습니다.
그의 영역은 뉴욕이고 거기서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하며 노련하게 부르쿨린 억양으로,
그림 그려줄까, 반은 여자로? 반은 동물로 그려줄까? 라고 떠들었답니다.
그의 그림이 마치 자격증 처럼 자랑스럽게 아파트나 사무실에 장식되는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그렇지만,
나에 비하면 피카소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즐겁게 말하고는 했답니다.
그의 그림은 그의 인생의 상흔과도 같습니다. 부르클린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읽고 쓰는 것 조차 배우지 못했으며
누이와 함께 브롱스에 살면서 매일아침 컬럼비아 대학으로 출근 해서 캔디를 팔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학생들은 그의 정신세계가 어떠 한지 알 수 는 없었지만 그의 그림은 오묘하고 심리학 교과서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유명하고 명성을 얻은 사람들 처럼 그의 모든 점에서 예술가 이다"
- International NY Times 기사에서
신문에 난 이사진을 보고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영감을 얻어 ....
그렸습니다!!
'Outsider Art & Henry Darg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웃 사이드 아트에 관한 전시 둘 (0) | 2016.02.05 |
---|---|
비비안 마이어 (0) | 2015.07.20 |
미술치료 유감 (0) | 2012.06.13 |
꽃은 피고, 지고 (0) | 2012.05.04 |
낙수.落水 (0) | 2012.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