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헌트 .
logic-tight compartment 에 빠진 집단의 폭력과 광기에 포커싱 해야 겠지만,
사건의 단초가 되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한 인간의 정신활동이, 자아의 경계를 넘어서, 타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는가 그 시발점들입니다.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자신의 범주 안에서 적당히 관계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던 한 풍광좋은 평온한 시골마을.
루카스는 아들의 양육문제로 이혼한 아내와 실갱이를 벌이던 중이며 그 변덕에 좀 짜증 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클라라의 깜찍한 구애를 무심코 그러나 확실히 매몰차게 거절해버립니다
클라라는 오빠들이 자기에게 가한 장난의 불쾌감을 오버랩하여 흠모하던 루카스에게 투사합니다.
이 어린 소녀의 진술을 들은, 할머니 교장은 처음에는 반신 반의 하지만,
루카스가, 다른 보육교사와 히히덕 거리는 것을 보는 순간 의심을 굳히게 됩니다.
(클라라와 교장의 무의식적인 질투를 짐작해봅니다. 클라라는 루카스가 사내 아이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노는 것에 부러움을 보였고,
교장은 히스트리오닉한 나이든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루카스와 친구이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인간은 본래, 다른 생명을 사냥 하고 살아 야 하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문명은 여러가지 금지, 억압을 시키는 계약의 장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본능적인 부정한면, 악, 그리고 공격심, 또는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한다는 두려움으로,마치 홀리는 듯, 집단의 힘에 편승하게 됩니다.
아내로 부터 버림받고 홀로산다는 것밖에는 그저 평범한, 오히려 우직하고 착한 루카스는, 집단적인 편집증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렇다면 루카스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이 많은 루카스는, 은연중, 뭐든지 다 수용할 것 같은 환상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으며,
이것이 배반 당했을 때 상처는 오히려 기대 하지 않은 대상보다도 더 크며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의 꾸준한 선한 행동은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의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도 하지 않은 , 순수한 이러한 유형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끝까지 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던 한 친구는, " 네가 너무 참기만 해서 이렇게 된거야' 라고 충고합니다.
영화의 말미에 , 라인line을 밟지 않으려는 강박행동이 있는 클라라가 격자 무늬 앞에서 난처해 하자
루카스는 조금 망설이다가, 번쩍 아이를 들어 올려 안고 격자의 마루를 성큼성큼 건넙니다.
세상에 주어진 수 많은 금기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고 좀더 당당하게 자신있게 살아가는 것이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끝은, 공격적 본능을 끝내 회수 하지 못한, 한 이탈 deviate 된 인간이 여전히 루카스를 공격하는 것으로 맺습니다.
프로이드의 초기 분석의 예에서 material의 상당부분이 사실이 아닌 fatasy이며
이는 의식적인 거짓말과 다른 무의식의 정신활동으로 이를 분석하는 것이 환자의 내면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하였습니다.
클라라의, 영화 속죄나 쿠루서블에 나오는 소녀들의 질투심과 복수에 대해서도 흥미롭습니다.
한번 숙고해 보고 싶은 테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