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을 것을 챙겨 주지 않으셨다해도, 어머니는 항상 손수 먹거리 준비를 하셨습니다.
세심하게 맛을 봐가면서 정성을 들이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방식으로 자식을 거두어 먹이는, 풍요와 안정감을 제공하셨습니다.
가장 신경 쓰시는 일은 대가족, 복잡한 가족내 다이나믹을 생각해서 공평하게 나누어야 했으므로, 항상 풍족하게 사들였습니다.
형제 들이 많아 등록금을 대느라고, 집문서가 집에 있어 본 적이 없을 정도 였지만, 그리 검약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생선 장수 아줌마.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여름에는 소금 간을 강하게 한 갈치나 마른 생선 같은 것을
함석 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우리집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 부터 함박 웃음.-어머니가 항상, 전부 다 털어 사셨기 때문에.
, 물 한바가지, 때로는 점심 한 상 얻어 드시고 빈그릇을 옆에 끼고 돌아 가십니다.
과일, 복숭아( 아버지가 좋아하시고, 왜 그랬는지 담배 해독이 된다 믿으셔서 자주)는 과수원에서 궤짝채로,
수박도 두세덩어리 한꺼번에, 그리고, 참외. 항상 껍질을 두껍게 깍아서 단 부분만 먹게 해주셨습니다.
가을에는 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있는 선산의 감나무에서 수확한 감을, 장독에 짚 켜켜이 넣고 , 서리가 내리고 한 겨울 까지
홍시를 만들어, 꺼내 먹었고, 어머니는 전을 부치셔도 서너개 채반에 가득, 동지 팥죽은, 솥에서 몇 차례 끓여내어,
장독대에 찜통 몇개에 담아 식히느라 늘어 놓으셨습니다.
생선도 모두에게, ( 어른이고 아이고)통채로 한마리씩,
닭을 삶으셔도.. 내 친구들처럼, 여자고 어린애니까, 닭다리는 순서도 안오는 그런 뼈아픈 기억은 없습니다.
아 한번 올이 풀리니, 줄줄이, 끄집어 나오네요, 생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탱자, 앵두나무 열매,, 사루비아 꽃 밑둥 단 맛 ,
유자, 꽈리 열매, 살구나무, 감꽃, 우리보다 못사는 옆 집에 가서 얻어 먹던, 보리밥에 신 열무김치..
아직, 15살도 안 된, 막내오빠의 친구가, 소년가장이 되어 동네어귀에서 만들어 팔던 호떡을 어머니가 한보따리씩 사오셨던일,
밥지을 쌀에서 돌 고르느라 키질, 양푼에 조릿대 돌리는 싸르륵 소리...
어머니, 밤 늦은 학생연극 연습 마치고(저는 자주, 그 강당에서의 연습 광경을 구경가고는 했습니다)
, 학교앞 교동집에서 양은 냄비에 담아내는 그 우동, 나무젓가락에 배인 맛, 냄새...
그런 시간들이 ...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곁에 모시고 밥 한 숟가락 떠드리는 일 조차 못하고,, 삽니다.
숲에는 꽃 만큼, 나비가 많습니다,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사진에는 안보입니다만, 어쨌든 ..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