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간 동네가 과거에 공동묘지 자리였다고 말하면서, 좀 찜찜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듣고 보니, 마음에 걸려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고향집은 말이 소도시지, 당시는 복숭아 꽃 살구꽃 피는 과수원에,
야트막한 뒤 야산은 듬성듬성한 소나무 몇 그루,
주인없는 묘지( 그 동네에서는 묘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가 여러채 있어,
숨박꼭질의 몸숨기기가 좋았고, 전쟁놀이- 저 어릴 때, 막대기 들고, 망아지 처럼 뛰어다니며 즐겼던-
할 때, 그 위에 올라서서, 호령도 하고, 뛰어내리며 공격도 하기 좋은 놀이터 였습니다.
중학교 때 절친하던 친구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앓다가 가버렸는데,
이후 제 혹독한 사춘기를 겪게 했고, 자주,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
친구가 묻힌 공동묘지에 가서, 친구의 묘지 옆에서, 청승을 부리던 기억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인의 스튜디오를 다닐때, 길가에 있던 Cemetery에 잠시 쉬면서 묘비에 새긴
애틋한 그리움 사연들을 읽기도 하고, 죽은 혼령과대화를 나눈 일도 있었으니,
제가 귀신이나, 죽음에 대한 타부는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죽음을 심각하게 여길 일이 없어서 였을..수도 있고,
마치 멀리 떠난것 같게 느껴지는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이, 그들이,
뭐 저에게 나쁜 기운을 줄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이별하기 까지 힘들었던 친구들..
죽음이야말로, 삶의 예측할 수 없는 갈등, 혼란, 집착, 불안한 마음들을
다시 한번 깊게, 명상 할 수 있게 하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나의 단계가 아닌가,
햄릿이 고국으로, 호레이쇼와 같이,몰래 들어 오면서, 무덤을 파는 인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논하고,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그 냉소를 벗고, 깊은 슬픔에 몸부림 치는 장면,
푸생(Poussin)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묘사한, 아르카디아에도 나(죽음)는 있다..Et in Arcadia ego
때로 죽음에 대한 명상은, 붙들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 놓으면서
생을 가볍게 해주는 화두가 될수도 있지 않을 까...생각합니다.
Poussin, Et in Arcadia ego-Goggle Image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