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어떤 분이셨을지..
나이가 들어 가면서,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야 나의 우주 였으므로, 어떤 류의 사람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만,,
인정받고 싶고, 때로는 의지 하고 싶은 것은 자식의 심정만이 아니라,
그 역도 성립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살아 온 인생을, 아이로 부터 비판을 받는다던가, 알아 주지 않으면
아직 힘이 남아 있다면, 분노로 누르고 싶을 것이며,, 슬퍼지기도 할 것입니다.
분별이 많아지고 자의식이 커가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부딪힘이 있다보니,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 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아버지는 저에게 약한 모습도 많이 보이셨습니다.
지금생각하면, 건강염려라 할 정도로, 여기저기 아프다시며, care 받기를 원하신 적도 있고,
어머니 는 - 사랑이 있으시기는 하지만, 열정적이고, 자기본위가 많아서-
자상한 모성은 아니셨던것 같은데,,, 사춘기 무렵에는, 제가 오히려 돌봐드리던 때도 있었는데,
좀, 중년의 우울증을 겪으셨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패기와 냉철한 이성으로, 교육자로서의 성취가 많으셨던 아버지가, 이런 심정이 싫으셔서
일찍 퇴직을 신청 하시는 결단을 내리신 것도 이시기의 극복과 새로운 인생관을 구상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집안일을 손수 하시며. 혼자 식사를 챙겨드시고, 마당의 나무를 가꾸시며, 규칙적인 산책,
조간신문의 크로스워드 퍼즐맞추기를, 큰, 국어 사전을 옆에 놓고, 매일 하셨고,
퇴직일 부터 시작한 금연을, 일기에 날짜를 적어가며, 천 사오백, 일이 넘어 갔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제가 큰아이의 양육을 떠 맡기다싶이 부탁드렸는데, 집구조를 다 바꾸시면서 열의를 보이셨고,
다음해 겨울, 두분의 피로가 누적 되었는지..어머니가 심하게 앓으셨는데, 이어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넘어지셨고,,
어머니는 " 내가 먼저 갈까봐 두려우셨을 거라고..그래서 지레 먼저 쓰러졌다고" 하셨고,,
저는 죄송함으로, 아직까지 , 감정을 정리 못하고, 묻어둔, 회한의 하나입니다..
오늘 아침,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언덕길을 내려 오는데, 앞서 가던 청년이 내뿜은 담배 연기가
날려와 다른때와는 달리, 그리 역하지 않고ㅡ, 문득 그리움이 드는 것은,
어려서늘 아버지에게서 풍기던 그 냄새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