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마중

torana3 2011. 4. 7. 09:07

1. 아버지는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정년보다 일 찍 퇴직을 신청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소한 문제에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고

노년의 고집을 부리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 하셨습니다.

이후로 주부임을 자처 하시며, 집안의 소일을 보시거나, 짚지도 않으시면서, 지팡이를 끌고

매일, 운동삼아 가까운 곳을 돌아 다니셨습니다.

 

저는  방학 무렵, 시험이 끝나자마자, 만사 제치고 귀향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좀 위축되었던 그 시절, 성년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이드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그리운 곳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는 날 정도나 알려 드렸을 뿐인데, 전주의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하면,

항상 아버지가 그 곳 벤치에 앉아 계셨습니다..

제가 신기해서, 어떻게 도착 시간을 아셨냐 해도, '그냥.. 그시간 쯤일것 같아서.."

모르는 체 하셨습니다.

매사 치밀하신 성격이시라,  계산을 하셨거나, 하숙집에 미리 물어 보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매일 그시간에 나와 계셨거나...

빙긋 웃으시면서, 앞장 서서 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당연하게, 저에게 보여주시는 애정을 누리고는 했습니다.

졸업무렵, 남편과 막 사귀기 시작 하면서 - 고향이 같아서- 같이 귀향 하는 날,

아버지가 못나오시게 제가 좀 트릭을 썼고, 그것을 나중에 아셨을 때도 내색은 안하셨지만, 가벼운 상실감을 겪으셨을 것, 짐작만 합니다.

 

2. 결혼하고 큰아이를 맡기고 있을 때 수련중이라 휴가나 받아야 뵈러가고는 했는데,

제가 본래 쇼핑에 무관심하고, 외모에 신경을 안쓰던데다가,

결혼 직후, 독립해 사는 생활이 그리 넉넉치 않아서

안경이 구식이고 테가 망가진 것을 그냥 쓰고 내려 갔는데,

" 환자를 보는 의사가, 안경이 너무 남루하다고' 아버지가 속상해 하며 핀잔 하셨습니다.

' 환자를 보는것, 외모가 아니라, 인격이야' 하며 까부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시더니

어느날,슬그머니 헌 안경을 가지고 나가서 새 것으로 바꾸어 맞춰 오셨습니다.

몰래 깜 짝 놀라게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장기 였으며, 저는 그때도,,,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미쳐 깨닫지도 못한채...

그 안경도 거의 유행이 다 갈 정도로 오래 썼던 것 같습니다.

 

모자라고, 챙겨주어야 하고, 기대야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알았던, 참 철이 없던 기억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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