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가?
정의나 양심이 행위를 결정 하는 일이 점점 더 희박 해지는 사회 현상을 느끼면서
때때로 마음속에 느껴지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까지고 그리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극단의 자기애와 이기주의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에 의해 사회 전체가 뒤집어 지는 혼란을 겪고 있는 듯 합니다.
눈감고 귀막았던 기회 주의 자들이 쓰나미에 휩쓸리듯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 내야 할까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
"스토너는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 할 수 없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 다 간 선조 들에게서 물려 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선조들은 자신을 억압 하는 세상을 향해 무표정 하고 단단 한 얼굴을 보여 주자는 공통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무감각 하게 바라 보는 것 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살아 온 세월을 의식 하고 있었다. ... 심연을 바라 보고 있는 것 처럼 .. 단단하고 황량한 표정을 짓게 되었던... 그런 표정을 공기만큼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어렸을 때부터 겪은 절망의 징조를 보았다." - 스토너/ 존 월리엄스
한 강 작가의 감정을 감지 하기 어려운 늘 한결같은 표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풍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 간혹 이래도 되는 가 라는 작은 양심과 죄책감을
애써 지우면서 살아 오는 동안, 그녀는 선조 들이 물려준 구원의 방식에서 눈을 돌리지 않은채 지키고 있었나 봅니다.
계속 스토너입니다. 그의 딸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 사랑 을 깨 닫습니다.
" 아이가 워낙 섬세한 도덕적 본성을 타고 났기 때문에 계속 그 본성을 키워 줘야 하는 드물고 사랑 스러운 인간에 속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세상과 이질 적인 본성, 부드러운 애정과 조용한 생활을 갈망하는 본성이 무관심과 무정함과 소음을 먹고 자라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했던 인간들에게 그녀가 이 쓰나미를 몰고 오는 마법을 부린거 아닌가 ...잠시 환상에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