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는 하지만 최근에 크게 위로 받은 시 두편, 골라 올립니다
첫번째 시는 James 님의 번역입니다.
- 부처님과 함께 눈치우기
절이나 동네 중국요리집에 걸어놓은 부처님 그림에서,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물기없는 (펄펄날리는) 눈이
산처럼 거대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둥근 어깨,
매듭지어진 머리를 가진 정신집중의 표상위로
던져지는.
앉아 있는 것이 부처님의 경각제(하기좋아하는 일)이다.
만약 그것이 행위 이거나 무위無爲이거나 에 대한 적합한 말이라면.
그에게는 계절조차 맞지 않다.
그의 설법의 기록에서 보면 덥거나 약간 습하지 않았던가?
그의 성스러운 표정에도 보이지 않던가?
우주의 허리를 감을 만큼 커다란 미소를 담은.
그렇지만 우리는 드라이브웨이에서 눈을치우고 있지 않는 가?
한삽 한삽 씩.
우리는 가벼운 눈가루를 청명한 공기속으로 던진다.
우리는 얼굴에 찬이슬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진다. 무거운 눈덩이를 던질 때마다 우리가
만든 샘솟듯이 퍼져나가는 눈보라 속으로.
이거 교회설교보다 훨씬 좋네.
내가 크게 떠들어도 부다는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눈과 햇빛의 신앙,
그리고 하늘에서 우는 겨울철새의.
내가 그렇게 말해도 부처님은 내말을 들을 겨를이 없다.
부처님은 온 몸을 던져서 눈을 치우신다.
마치 사는 목적이 그것인 것처럼,
완벽한 삶의 표상이 눈치운 드라이브웨이 인 것 처럼,
고장난 히터와 라디오를 켜고.
쉽게 차를 몰고 속세로 나갈 수 있는,
아침 내내 우리는 나란히 같이 일 했다.
나는 이야기하고
부처님은 침묵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 처럼 아무말 없이
그러는동안 벌써 점심 때가 가까워 졌네.
어느 덧, 우리 주위에 눈이 높이 쌓였는데,
갑자기 부처님이 말씀 하신다.
눈 다치우고 안에 들어 가서 카드 놀이나 할까?
그럼요. 나는 대답 한다.
카드 섞는 동 안에 밀크 데워서 따뜻한 초코렛
한잔 테이블로 가지고 가지요. .
그리고 벗어 세워둔 우리들 장화는 문 옆에서 물이 줄줄 떨어 지고 있다.
아하, 라고 하더니, 눈을 치켜 뜨고 삽을 잡고 잠깐 서 있더니
삽의 날카로운 날을 반짝이는 흰 눈속으로 깊이 쑤셔 넣으 신다.
- Shoveling Snow with Buddha ,Billy Collins; B 1941 미국
<위로>
다윈,
스트레스를 풀려고 그는
가벼운 소설만 읽었다지
행복하게 끝나는 것만 읽었다지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격분한 그는
타오르는 벽난로에 책을 던졌다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기꺼이 믿으련다
멸종되어 가는 것들을, 약육강식을,
끊임없는 생존경쟁을, 그럼에도 결국에는
모두 죽어야 함을, 수 많은 곳에서
보고 또 본 것을 내면에 기록하면서
인내의 한계에 이른 그는
최소한 소설 속에서나마
해피엔딩을 요구할 권리가 있기에
그리하여, 사랑하는 이들의 재결합하고,
오해를 몰아내고, 가족들이 화해하고,
착함이 보상받고, 날린 재산이 돌아오고,
보물은 발견되고, 완고한 이웃들은 태도를 고치고,
명예가 회복되고, 탐욕은 벌을 받고,
노처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사고뭉치는 남반구로 사라지고,
서류위조범은 계단에서 밀려 떨어지고,
혼인빙자 사기꾼은 주례 앞으로 끌려가고,
고아들은 양부모를 만나고, 과부들은 수절하고,
오만함이 겸허해지고, 상처는 씻은 듯 낫고,
방탕한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손수건은 화해의 눈물로 흠뻑 젖고,
넘치는 슬픔의 잔은 바다로 쏟아버리고,
언제나 잔치하듯 흥겹고,
첫단원에서 길을 잃었던 강아지 '피도*' 는
신나게 짖어대며 막이 내리고,,
쉼보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폴란드 1923-2012 , 1996년 노벨 문학상
*Fido 이탈리아의 개. 이차 세계대전 중,죽은주인을 기다리며 매일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갔던 충견,
시는 그럴 듯한 형식을 맞추어낸 글 이라든가, 교훈을 말하고 져 하는 . 목적을 가지지 않습니다.
읽는 동안에 고요한 경치를 보는 것 처럼, 숲 솦에 눈을 감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 진다면 곁에 두고 읊어 보고 싶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