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짐을 싸던 날, 좋아하는 책들을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속이 상했습니다.
어이없는 딸의 투정을 듣던 아버지는 네 오빠들도 빈 손으로 갔다가 졸업 할 때는 책만 가득이더라며 웃으셨습니다.
그때 들고 온 책이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어머니의 입학 선물인 '석가의 생애' 두권입니다.
-어머니는 입학때마다 책을 선물 해주셨습니다. 중학교때 펄 벅의 대지, 고등학교때 색커리의 허영의 시장-
신입생 시절, 종로의 서점, 학교 도서관을 순례하면서 낯설은 서울 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소녀 취향, 서정시의 범위를 벗어나 에즈라 파운드나, 엘리오트의 이미지즘, 상징성들에 매혹 되었고,
나중에 정신분석을 공부 할 때도 이미지, 연상, 의미 찾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입니다.
김수영, 황동규, 강은교 의 시들을 즐겨 찾아 읽었습니다.
황동규, 정감록을 주제로 한 5개의 변주곡중 탈
탈이로다, 탈이야/ 구정부터 탈을 쓰고/탈끼리 놀다/
오광대 별신굿/큰 집 울 밖에서/정신없이 뛰다/
연말에 탈을 벗으면/얼굴의 뒷꿈치도 보이지 않아/
동네아낙 기웃대며/자기얼굴찾아가/
오기로 탈을 겹으로 쓰고/구설수 낀 주인들을 찾아 볼거나/
탈면에 뜬 허한 웃음의 가장자리는/ 밤술의 공복으로 조심히 닦고.
이 시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면담중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들이 슬펐습니다.
남의 마음
오 갈데 없는 마음하나, 내 안에 앉아 있다.
뉜가가 쓰다가 버리고 가버린 것을
얼결에 집어들고는
등에도 지어 보았다가 머리에도 이어 보았다가
얼굴 덮는 가리개로 써 보았다가
어디에도 맞지 않는 남의 마음을
그냥 버릴 수도 없어서 들고 다니다
내것은 눌러서 한켠에 밀어두고
그 안에 넣어 두고 잊고 살랬더니,
헛구역질, 가슴앓이, 뒷목이 당겨서
이제는 내가 죽겠다고 들여다 보니
니것 내것 구별없이 뒤엉켜버려
버려버릴 도리도 없고 탓도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