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아 제 인생의 황금기는 15세 이전, 특히 초등학교 다닐 때가 아닌가... 그리 생각합니다.
심하게 톰보이 였었고, 학교에서도, 체격도 큰데다가, 어른들 틈에서 들은 말투를 흉내내는
조무래기들 사이의 대장 노릇 쯤 하면서도 별 좌절이 없이 보냈던 시기입니다.
기억에 가끔 숙제도 안해가고, 거짓말 하고 수업 빼먹고 놀러가기도 했지만,
크게 야단 맞은 일도 없으니, 부모님과 어찌어찌 서로 아시던 선생님들이 그냥 넘어가 주기도 했으니,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좀 안하무인이라 걱정 하시던 분들도 있었을지....
언젠가 학교에 가기 싫어서- 학교거부 라기보다는 그저 게으름- 이불 속에서 입김을 불어 체온을 억지로 올리고,
어머니는 그저 이마 한번 집어보더니, 결석하라고 쉽게 말하셨습니다.
매사 그런식, 규칙을 굳이 강요하고 조바심이나 의심이 없이 대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문득 출근이 싫어 졌습니다. 비가 오는 서늘한 날씨에, 몇칠간 무더위가 피로하기도 했고,
여러 우연이 연결 된 상념들이,
예를 들면, 아침에 너무 일찍일어나 잠깐 영화 리스트 뒤지다 무료로 뜬 " 맨 프롬 어스"
한 대학교수가 갑자기 사직하고 떠난다기에 동료들이, 환송겸, 모입니다. 다정하고, 유쾌한 농담들을 주고 받다가
떠나는 이의 괴이한 사연을 듣게 됩니다.
다운 받아 놓은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 보고싶은 마음을 미루면서 그 감질 맛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처럼, 현실과 닿지 않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경험하며 즐기는 peer group들입니다.
어제 주기적으로 한번씩 일어나는 직장내의 ,끼어들고 간섭하기도 좀 지겨워 지는 so,so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퇴근 무렵 한 분이 뒷산에서 야생 딸기를 한 줌 따다가 선물로 주십니다.
조심스럽게 병에 담아 가져왔는데도, 짓물러 흐르는 붉은 과즙의 빛깔이 곱습니다.
식구들에게 얼마나 상큼한 천연의 맛인지 호들갑하며 먹여 보려 했지만, 예의상 한개 집어먹어 보고는 물러섭니다.
그대로 꼭지도 떼지 않고 설탕에 재어 놓았습니다, 술 한병 사다가 담가 볼까합니다.
열매를 따서 술을 담그는 이유가 단지 먹거리 채집은 아닌듯 합니다. 조물주가 창조한 美를 소유해보고 싶은 욕망?
일탈을 요구 하는 그런 , 철부지 행동에 대한 trigger 들입니다.
동료에게 문자 날립니다
"제가 혹시 제시간에 출근을 못하더라도 더이상 저를 찾지 마세요.."
" 그러시던지, " 시쿤둥 반응 - 평소 허튼 소리를 자주 했었는지, 실종 시나리오가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십수년전 시외버스를 타고 , 지각 출근을 하던 어느날, 버스 차창밖 풍경을 보면서 적었던 시입니다
날짜가 1996년 6월 10일로 적혀있습니다.
雨中 미사리 구름
우중(雨中)에
강물에 다리하나 떨어뜨리고
허공에 매달려있다.
날렵하게
거미처럼.
물 줄기를 뽑아 엮어서
하늘을 받치고
산을 덮고나서
미동도 아니한다.
거미처럼
있는듯, 없는 듯
부드러운 유혹으로
사로잡아 버린다
나는 옴짝 할 수 없게 되었다.
거미의 작업처럼.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맨 프롬 어스에서
주인공이 선사시대 부터 현대 까지 줄곧 살아 왔다는 말을 들으면서, 친구들이 그가 겪었을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현대적 시각으로 물어 보려 하자,
그는, " 나는 그저 나였을 따름이야, " 항변합니다.
17년전의 6월 그날, 그리고 오늘 아침의 나. 같은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고도, 출근해보니 겨우 30여분 지각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