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969년 1월에

torana3 2012. 2. 2. 10:01

1969년이면 1월 4일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 . 눈이 많이 내려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되던 날 밤.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고, 눈길을 미끌어져가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는 한 눈이 의안이시라, 광각기능이 떨어지셔서 걸으시는것이 불안정 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날짜입니다.

그 날 밤 현실과 영화의 장면이 겹쳐져, 묘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3시간 가까이의 긴 영화내용을 당시는 전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눈에 덮힌, 북국의 평원, 비좁은 기차의 화물칸의 작은 통풍구를 열고,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는,

다락으로 뛰어 올라가 성애낀 유리창을 깨고 , 멀어져가는 연인 라라의 눈썰매를 바라보는,

그런 장면들이 뇌리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열정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물체 자체의 훨훨 타오르는 에너지가, 가장 자기 다움을 잃지 않고,

그것을 지키기위한, 회피, 변명, 합리화 , 이성적, 또는 이해적 판단, 타협 없이, 

올곧게 존재하는 아름다움.  그에 대한 흠모.

지바고나, 스콜세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표현된 주인공의 성향이며

제 어리거나, 청춘의 시기에 분명하게 있었던,  소중하게 여기던

지금은, 좀 유별나게 취급받고 도태되거나, 사라져버린 감정경향입니다..

 

그제, 눈이 많이 온 날,  오래 걸려, 미끌어지면서 산길을 내려오고,

 거리가 얼음으로 뒤덮여, 차도 별로 없던 북한산 길을 지나,

퇴근 하던 중에 떠오른 상념이었습니다.

 

그러고 전철을 탄 후 졸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시야에 특이한 우산 손잡이가 들어 옵니다.

우산을 펼쳐 들고 있으면,  붉은 정교한 손 의 형태가 감기어 들어 올 그런 디자인입니다.

사진 하나 찍어도 되냐니까, 인상 좋게 생긴 청년이 수줍어 하면서 허락합니다.

 

의사이던 지바고가, 현미경 렌즈로 보면서 감탄하던, 붉은 미세 생명,

라라의 결렬한 분노, 정열을 훔쳐보던 모습이 다시 오버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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