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 Imperno에서는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상징으로,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직한 장면들이 많이 묘사됩니다.
소설 The Dante Club 에서, 위선적인 유명인사들이 신곡의 묘사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이어집니다.
롱펠로우등, 단테클럽의 멤버들은, 단테가, 전쟁에 참가했기때문에 이러한 장면들을
실제 목격했을 거라는 해석을 합니다.
영화나, 미술, 문학작품에서 이러한 uncanny 한 미의 추구가 소재로 많이 등장하며,
인간의 강박적인 죽음에 대한 상징적인 경도가 보편적이라고도 보여집니다.
프로이드의 케이스에 나오는 꿈들, 키리코나 달리, 에른스트등의 초현실주의 그림,
히치콕, 데이비드 린치, 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쩌면, 혐오와 공포를 일으키는 이런 소재들의 존재에 끌리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적, 근원적, 소망으로, 프로이드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삶의 의지(libido)에 반하는 죽음에의 본능(Thanatos) 라 설명하였지만...
어린아이들, 또는 트라우마를 받은 신경증 환자에게서 일종의 상실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강박적으로 이런 불유쾌함으로 몰입하고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많이 봅니다.
젊어서, 이러한 정신세계를 공부하기위해 의도적으로 동반하여 파고들어가는 시도를 많이 했지만,
나이들어서는 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치료자로서..
가능하면 덮어 두려고 합니다. 파헤치지않고, 강박적 행동을 멈추고
따뜻함, 사랑, 부드러움, 가벼움, 밝은 것등, 긍정적 유머로 대처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이며 어두운 정서를 유발 하는 작품..저는 즐기지 못합니다.
최근에 아주 상반되는 두가지 영화를 보았습니다.
내가 사는 피부(The Skin I live in 2011,)
그로테스크한 미를 추구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입니다.
살인, 유괴, 변태적 사랑, 인체해부, 실험, 이상성격, 사육, 등
지하(무의식)의 격리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환상들 ...
.. 불가항력의 트라우마로부터 치유한다는 의미로 루이스 부르조아의 작품들이 삽입된다 하지만,
좀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입니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Taipei Exchanges 2010)
우화와 같이, 상처 조차도, 나른하고 아름답게 몽환적으로 처리하며
사랑스러운 예쁜 그림, 달콤한 과자들, 커피향...
그러나, 솔직이는 이도 그리 공감은 안갑니다.
사실적이며, 열심히, 착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다큐 필림이 요새는 더 편합니다.
나이들은 때문일까요??